“관객과 팬들은 깜짝 놀랐죠. ‘그’가 행복하지 않다니… 그를 행복하게 만들 방법이 없었어요. 자신을 계속 밀어붙이다 결국 폭발해버렸으니까요.”
세계 최고로 꼽히는 영국 로열발레단 관계자가 얘기하는 ‘그’는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27)이다. 그에겐 ‘천재 무용수’와 ‘악동 발레리노’, ‘반항아’라는 수식어가 동시에 따라다닌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댄서(사진)’는 연대기식 구성으로 폴루닌의 무대 뒷이야기를 보여준다.
폴루닌은 어린 시절부터 발레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16세였던 2006년 로잔 콩쿠르 파이널리스트 메달과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YAGP)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단숨에 스타 유망주로 떠올랐다. 발레학교에선 연습실에 가장 늦게까지 남는 성실한 학생으로 통했다. 이듬해 영국 로열발레단에 입단했고, 2년 만에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올라섰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사고뭉치로 돌변한다. 폭음을 하고 공연 전날 리허설에 빠지는가 하면, 마약을 복용한 채 무대에 서는 것이 좋다는 고백으로 파장을 낳기도 했다. 몸에는 ‘더러운 돈’ ‘정신병원’ 등의 문구나 영화 ‘다크나이트’ 악역 조커 얼굴 등을 문신으로 새겼다. 스캔들에 싸여 지내던 폴루닌은 2012년 발레단을 돌연 그만뒀다. 영국 무용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폴루닌의 설명은 간단하다. “그날 리허설이 잘 안 풀렸어요.”
영화는 폴루닌이 촉망받는 천재에서 무용계 이단아가 되기까지 과정을 생생히 풀어낸다. 폴루닌 개인의 춤과 갈등만을 조명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무용수 한 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보여준다. 무용수는 무대마다 완벽해야 한다는 극도의 압박감에 시달린다. 춤 교습과 연습, 공연을 쳇바퀴처럼 반복하면서 삶의 여러 측면을 포기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어린 시절 부모가 선택해놓은 길을 계속 가고 있다’며 혼란스워지기 십상이다.
무용수를 뒷바라지하는 가족의 희생도 빼놓을 수 없다. 폴루닌의 아버지는 아들의 발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각국의 건설 현장을 전전했다. 할머니도 외국에 나가 요양사로 일했다. 폴루닌은 “나때문에 가족들의 삶이 바뀐 것 같아 괴로웠다”며 “차라리 어디든 다쳐버려서 발레라는 선택지가 없어지길 바란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폴루닌과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예전 뉴스 영상과 기사 등을 엮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야기 중간마다 삽입된 폴루닌의 춤 영상이 훌륭한 볼거리다. 폴루닌의 발레학교 시절부터 그의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로열발레단에서의 무대, 발레단을 그만 둔 뒤 현대무용가와 협업한 무대 등 다양하다. 화려한 무대 뒷편에 선 무용수의 고백을 듣고나면 그의 춤에서 인간적인 고민이 엿보인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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