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채권 등 분야별 매니저가 펀드설정액 나눠 독립적으로 운용
수익률 변동 적고 안정적
DS·트러스톤·안다운용 등 도입
[ 김우섭 기자 ] 한 명의 스타 펀드매니저가 수백억~수천억원의 펀드를 ‘진두지휘’하던 한국형 헤지(사모)펀드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식과 채권, 메자닌(전환사채 등 주식·채권의 성격을 모두 가진 상품) 등 투자 대상별로 매니저를 두고 각자 알아서 운용하도록 하는 ‘멀티 펀드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하는 운용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투자 쏠림 현상 막아라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한국형 헤지펀드 운용사 전환 이후 수익률 부진에 시달렸던 DS자산운용은 멀티 펀드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고 조직 개편 작업에 나섰다. 주식 부문은 업종별 매니저가 나눠 맡고, 메자닌 등 대체투자는 전담 매니저를 따로 둘 방침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펀드당 한 명의 매니저가 모든 투자를 결정했지만 펀드수익률이 출렁이는 일이 잦고 펀드마다 성과에 큰 차이가 나는 등 부작용이 컸다는 판단에 따라 운용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다.
트러스톤멀티자산운용은 지난해 9월 설립 당시부터 멀티 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식(롱쇼트) 전략을 담당하는 에쿼티팀과 대체투자(증자·기업공개·메자닌 등), 글로벌매크로, 퀀트(수학·통계를 활용한 계량분석기법)를 담당하는 별도의 매니저를 두고 있다. ‘트러스톤 멀티인텔리전스’ 펀드는 5명의 매니저가 펀드 설정액의 20% 안팎씩을 나눠 운용한다. 포트폴리오 구성에 서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 쏠림 현상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업계 5위권인 안다자산운용도 박지홍 전 헤지펀드본부장이 퇴사한 뒤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박 본부장은 지난해 설정액 1위 펀드에 오르기도 했던 ‘안다크루즈’를 운용한 스타 펀드매니저다. 전체 투자를 총괄한 박 본부장을 대신할 만한 후임자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담 매니저에게 자금을 분산하기로 했다. 증권사 프랍트레이딩부(자기자본 매매) 출신인 박영엽 매니저(메자닌)와 주영광 매니저(퀀트)를 영입했다.
◆투자 대상 넓힌 멀티애셋펀드 증가
2~3년 전만 해도 헤지펀드 시장에선 될성부른 주식을 사고(롱), 그렇지 않은 주식을 파는(쇼트)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가 대부분이었다.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이면서 ‘대형주 매도’ ‘중형주 매수’ 방식만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형주 장세로 시장 흐름이 바뀌고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롱쇼트펀드의 수익률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운용사들은 수익률 부진 타개책으로 롱쇼트 전략 이외에 차익 거래, 이벤트 활용, 전환사채(CB), 기업공개(IPO) 투자 등 전략과 대상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펀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에 설립된 헤지펀드 중 멀티애셋 전략을 추구하는 펀드는 75개로, 설정액은 2조1248억원까지 늘었다. 전체 헤지펀드 설정액의 27.3%에 달한다. 박종순 안다자산운용 상무는 “한 매니저가 여러 투자 전략을 모두 이해하고 투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전공 분야를 나누는 게 전문성 측면에서 낫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멀티 매니저 시스템이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미국 3대 퇴직연금펀드 운용사인 캐피털그룹은 한 펀드에 4~7명의 매니저가 각 분야를 맡아 투자한다.
멀티 매니저 시스템을 가장 먼저 안착시킨 업계 1위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선전도 자극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18명의 펀드매니저가 자금을 분배받아 자신의 투자 영역에서 따로 투자하는 방식으로 지난 13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지 않았다. 증권사 프랍트레이딩부였던 NH투자증권 헤지펀드도 멀티 매니저 시스템으로 지난 5년 동안 매년 플러스 수익을 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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