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토리 누가 읽나, 스킵 바쁜데"
블리자드 열풍 속 국내 게임 IP
과금 유도 게임만 넘치는 현실
국내 게임 '믿고 거르는' 유저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19년 전 발매한 스타크래프트의 재탄생을 예고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죽기는커녕 회춘해 돌아왔다. 캐릭터, 시나리오, 플레이 방식 모두 추억의 스타크래프트 그대로다. 그래픽 향상과 게임 외 편의사항 개선만 이뤄졌을 뿐, 알맹이는 변함이 없다. '블리자드키드 (블리자드와 키드 합성어)'들은 열광 중이다.
지식재산(IP)을 향한 블리자드의 집착 혹은 노력은 쉼없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IP는 늘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작년 전 세계를 강타한 ‘포켓몬고’를 보라. 스마트폰 증강현실(AR) 기술로 ’포켓몬’을 잡는 게임. 스마트폰 화면 속 포켓몬과 어린 시절 빵 봉지 속 포켓몬은 변함이 없다. 새롭지만 낯설지 않다. IP가 가진 힘이다.
올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IP의 행보가 유독 돋보인다. 최고 모바일게임매출 기록을 경신한 리니지2 레볼루션부터 리니지 레드나이츠, 뮤 오리진까지. 모두 기존 게임 IP를 모바일에 이식한 결과물이다. 20여년 전, PC 게임시장을 장악했던 젊은 게이머들은 이제 린저씨 (리니지와 아저씨의 합성어)라 불리며 큰 손 유저로 성장했다. 상장을 앞둔 넷마블은 리니지2 레볼루션 성공에 힘입어 시가총액 10조 원을 거뜬히 넘길 예정이다.
미국의 스타크래프트와 한국의 리니지. 두 게임은 기존 IP에 힘입어 발전해온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들 게임이 유사한 성공 궤도를 그릴지는 미지수다. 우려의 시선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리니지에 꽂힌다. 내일 보단 오늘만 중시하는 업계 분위기 탓이다.
8년 차 게임사 개발자 A 씨는 현 상황을 이렇게 정의했다.
“업계 성공 공식이 있다. 유명 IP에 유명 퍼블리셔(서비스를 담당하는 공급사). 거기다 광고비 많이 쓰면 금상첨화.”
A씨는 “요즘 모바일게임 유저들을 중 과금에 피로도가 쌓인 사람이 많다"며 “비슷한 양산형 게임이 쏟아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으로 앞선 성공 공식을 따라 하기 때문이란 입장이다.
A씨는 모바일 게임 시장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게임이 처음 출시되고 스토어 인기 순위 50위권에 들지 못하면 그대로 묻히는 구조”라며 “중소 게임사는 게임 하나에 회사 명운이 달렸다. 좋은 퍼블리셔에게 간택 받기 위해선 수익이 뛰어난 게임을 만들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순위에 들어도 업계 특성상 수명이 짧은 기간 동안 수익을 내려면 과도한 과금 유도가 필수”라며 게임도 소위 ‘오픈빨’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실제 7일 기준 구글 플레이 스토어 최고 매출 50위 중 A씨 회사처럼 게임 개발 후 대형 퍼블리셔를 통해 서비스하는 게임은 18개. 특히 최상위층(자회사 개발 + 모회사 서비스)을 제외한 중위권층에 많이 분포해있다. 대부분 이용자가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과정에서 실제 개발사 이름을 알 수 없다. 스토어 내 개발자란 은 모두 공급사 이름만 표기돼 있다. 굳이 이용자가 품을 들여 개발사를 찾지 않으면 이용자는 당연히 공급사가 만든 게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출판시장에 빗대면 퍼블리셔는 출판사, 개발사는 작가다. 차이점은 저자 이름보다 출판사 간판이 중요하다. ‘국내 모바일 게임은 내용은 없고 과금만 유도한다’는 말이 생긴 이유 중 하나이다.
게임사가 자체적으로 IP를 개발하려면 스토리나 등장인물, 세계관 등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현실과 맞지 않다. 이미 고정 팬층을 확보한 IP를 사들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모험을 선택하기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살아남기 안정적이다.
업계 기획자로 몸담고 있는 B씨도 IP 개발 문제를 지적했다. “만약 게임사에 자금난이 오면 제일 먼저 정리하는게 시나리오 작가란 말도 있다”며 “굳이 분류하자면 장식적 기술보다는 기반적 기술이 우선시 된다”고 말했다. 장식적 기술로는 시나리오, 일러스트, 디자인 등이 있으며, 기반적 기술에는 프로그래밍, 기획 등을 꼽았다. B씨는 “장식적 기술은 주로 외주 업체를 쓴다”며 “그마저도 요즘엔 중국에 외주를 주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3년째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준비하는 C씨도 업계 상황을 전달했다. C씨는 “손가락에 꼽히는 게임사 채용 공고가 매년 줄어간다”며 “중소 게임사도 계약직 또는 열악한 근무조건을 제시한다”고 안타까워했다.
B씨는 IP 개발엔 몸을 사리지만 홍보에는 열을 올리는 관행도 꼬집었다.
“홍보비가 개발비 2~3배를 가뿐히 넘긴다. 이용자들이 접할 때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 순위권에서 게임을 선택한다. 업계는 순위권 진입 홍보를 중시한다. 게임성은 그 다음이다.”
이용자가 양대 스토어 외 게임을 만나는 통로가 없다는 토로였다. 그는 “해외 시장만 봐도 다양한 유통 플랫폼이 존재한다”며 “지금처럼 비슷한 장르, 비슷한 게임만 팔리다 보면 다양성 결여와 함께 이용자 이탈도 심해질 것”이라 우려를 내비쳤다.
모바일 광고 플랫폼 업체 아이지에이웍스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구글플레이 누적 매출은 약 2조900억원. 2015년(1조7000억) 대비 25% 성장했다. 반면 다운로드 수는 전년보다 10.1%(950만건) 감소했다. 매출은 올랐지만 고객은 줄어들었다. 돈을 쓰는 사람만 돈을 쓰는 구조다.
A씨와 B씨가 뽑은 국내 IP에 성장이 힘든 공통적 이유는 ‘유저(이용자)’다. IP에 공들인 창의적 게임을 만들어도 유저가 IP 자체에 무관심하다고 했다.
A씨는 "게임 시작할 때 스토리라인 읽어보는 유저 몇이나 되겠나, 다들 스킵 누르기 바쁘지"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이미 몇몇 업체들은 국내시장 대신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게임을 제작한다”며 “국내에는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적고, 장르적으로도 RPG(역할수행게임)에 집중하는 경향이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B씨도 국산 게임은 '믿고 거르는'(인터넷 비속어, 무조건 거른다는 뜻) 유저 문화를 아쉬워했다. 그는 “외국 게임만 즐기고 국내 게임은 믿고 거르는 유저들이 많다”며 “국내 유저와 게임사 간 간격이 계속 벌어지면 결국 국산 시장이 위험해질 것”이라 걱정했다.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학생 D씨의 바램도 같은 맥락이었다. “실험적이고 창의적 게임을 기획하고 싶은데 현실은 다르다”며 “회사는 창의적 게임보다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게임에만 관심이 많다"고 혀를 찼다.
구직자 입장이라 어쩔 수도 없다. 다만 그는 "처음부터 양산형 과금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취준생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바일 게임을 너무 상업적으로만 바라본다”며 “게임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재미다. 학교에서는 게임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데 현실은 산업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신규 IP개발에 투자없이는 장미빛 미래만 걷기 힘들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 업계 후배 중 90년대생들은 국내 대표 게임 IP로 손꼽히는 리니지도, 뮤도 해본적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10년 뒤 지금 모바일 게임 시장의 큰 손 30대, 40대가 된다. 그때도 국산 IP 모바일게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라 전했다.
작년 12월 블리자드는 자회사 ’블리자드 퍼블리싱’을 설립했다. 서비스 유통 개념의 퍼블리싱이 아닌 출판을 뜻한다. 게임업체가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자사 게임 IP를 활용해 소설, 만화, 아트북 등 다양한 2차 콘텐츠를 생산할 예정이다. 스토리가 가진 힘을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겠단 의지이자 IP를 더욱더 탄탄하고 방대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다.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IP의 다른 말은 향수다. 게임과 함께 추억이 다시 한번 되살아난 것을 환영했다. 팬들은 스스로를 ‘블리자드키드’라 부른다. 성공한 게임 IP는 한 세대를 묶을 만큼 영향을 가진다.
끝으로 B씨는 바람을 더했다.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 불어닥친 IP바람으로 IP의 힘은 충분히 입증됐다. 결국 게임사는 소비자가 원하는 게임을 만든다. 유저의 선택이 시장을 만든다. 시간이 흘러도, 반가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게임을 찾는 유저가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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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5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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