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불충분…수용 여부 결정 못해
시간 필요…사채권자 집회 미뤄달라"
정부·산은 "법적 책임 피할 생각만 하나"
[ 이태명/정지은 기자 ]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 회생의 ‘키’를 쥔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와 산업은행이 제시한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담은 보도참고자료를 11일 냈다. ‘시간을 갖고 협상하자’는 문구도 들어 있지만 사실상 ‘반대’로 기울었다는 게 정부와 산은의 분석이다.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대우조선 법정관리는 불가피해진다.
정부와 산은은 “국민연금이 법적 책임을 회피할 궁리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최순실 악몽’ 이후 국민연금 내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어진 탓에 대우조선 회생안에 대한 결정도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최순실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을 샀다. 이 사건으로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구속되고 기금운용본부는 감사원 감사,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국민연금 왜 반대하나
국민연금은 1조3500억원에 달하는 대우조선 회사채 중 29%(3900억원)를 보유한 최대 사채권자다. 정부와 산은은 지난달 23일 국민연금을 포함한 모든 사채권자에게 ‘회사채의 50% 출자전환, 50% 3년간 상환유예’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그동안 ‘신중히 검토하겠다’고만 답해 왔다. 하지만 이날은 ‘반대’ 의견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국민연금은 채무재조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자료 불충분이다. 산은이 대우조선 재무상태, 회생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를 주지 않은 탓에 채무재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게 기금 본연의 역할인데,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 노후자금 손실을 떠안을 수 없다는 논리도 폈다.
국민연금은 이런 이유를 들어 이날 산은에 추가 제안을 했다. 대우조선 재무상태에 대해 직접 실사를 하겠다는 것과 이를 위해 7월까지 4월 만기 회사채 상환을 미뤄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채무재조정안에 대한 찬반을 결정하기 위해선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굳힌 건 아니며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협의하는 방안을 도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산은은 격앙된 분위기다. “국민연금이 채무재조정안에 반대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급급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요구한 자료는 지난 10일 모두 제공했다”며 “어떤 자료를 주지 않았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대우조선 직접 실사와 4월 회사채 상환유예도 대우조선의 유동성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선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손실 1500억원↑
국민연금은 이르면 12일께 투자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여기서 반대 방침을 확정하면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산은은 P플랜으로 갈 경우 사채권자들의 손실이 자율 채무재조정에 동의할 때보다 대폭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삼정KPMG에 따르면 자율 채무재조정에 동의하면 사채권자들은 보유 회사채·기업어음(CP)의 절반인 7500억원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P플랜으로 가면 회수액은 1500억원(회수율 10%)으로 급감한다. 법원이 회사채 등 무담보 채권에 대해선 90% 출자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P플랜으로 가면 회사채 보유액 3900억원의 10%인 390억원만 건질 수 있어 자율 채무재조정에 동의할 때(회수액 1950억원)보다 1560억원의 손실을 더 본다.
다른 금융회사도 상당한 피해를 본다. 다만 사채권자들에 비해선 피해 정도가 덜하다. 산은의 채권 회수율은 자율 채무재조정 때 81.1%지만, P플랜으로 가면 66.2%로 낮아진다. 시중은행도 자율 채무재조정 동의 땐 채권의 34.9%를 회수할 수 있는 데 비해 P플랜으로 가면 회수율이 20.6%로 떨어진다.
이태명/정지은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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