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일본 도쿄대 공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은 도시바와 닛산자동차였다. 도시바는 문과 출신들도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초일류 기업이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구를 최초로 판매했고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의 일본 내 생산과 판매도 1호였다. 1990년대에 이미 매출 5조엔을 넘은 거대 기업이었다. 1984년 도쿄 중심부 미나토구에 40층 빌딩을 세워 쾌적한 근무 환경을 자랑하기도 했다.
닛산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의 닛산’이라고 불리면서 한때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을 기록했다. 직원들에겐 1등 정신을 키우면서 최고의 대우를 했다. 임원들은 대부분 도쿄대 공대생으로 채워졌다. 자동차 생산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부하던 기업이었다.
현장주의로 暗默知 키운 도요타
정작 도요타자동차는 당시 대학생 선호도가 동종 업종인 닛산에도 밀렸다. 신입 직원들은 오히려 지방대 출신이 많았다. 본사도 도쿄에서 300㎞나 떨어진 일본 아이치켄이었다. 전자 기업에 비해 연봉도 적었다. 2류 기업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도요타는 이들과 색다른 데가 있었다. 도요타는 신화가 있었고 영웅을 가졌다. 창업주인 도요다 기이치로를 비롯한 도요다 가문의 성공담은 한편의 서사(敍事)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럽고 험한 자동차 부품을 만지는 직원들에게 선배들은 손을 자주 씻지 말도록 했다. 하루에 몇 번씩 손을 씻으면 일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이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연구개발도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실험하도록 했다. 뭐든지 현장 우선이었다. 그들은 이런 문화에서 일을 배우고 꿈과 상상력, 창조력을 키워나갔다. 모든 종업원이 참가해 필요한 물건을 즉시 생산해내는 JIT(just in time) 방식이나 가이젠(改善) 등 ‘도요타 웨이’도 이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닛산자동차가 외국 기술의 힘을 빌려 고급차를 고집했을 때 도요타는 그들의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로 그들만의 방식을 형성했던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수백 번, 수천 번의 시행착오에서 나왔다. 최근 도요타의 가이젠 혁신 노력이 약간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암묵지는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도시바 웨이 못 만든 상상력 부재
지난 11일 5325억엔의 적자를 발표한 도시바도 닛산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도시바 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항상 GE의 선진 기술을 빨리 받아들여 모방하고 상품화하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문과 출신인 CEO들은 정계나 재계 단체와 인맥 쌓기에 바빴다. 이웃 히타치가 2008년부터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 재편을 했을 때도 기존의 문어발 사업을 고집했다.
도시바는 2009년 오히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해 핵심 역량이 아닌 원전 사업에도 나섰다가 실패했다. 무엇보다 도시바는 10년 동안 제대로 된 일을 만들지 않았다. 자만과 이기주의만 남고 한동안 있을 법했던 사내의 암묵지도 실종되고 말았다.
한국 사회는 지금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어떠한 시행착오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특히 기업인이 꿈을 꾸게 하기는커녕 암묵지마저 실종시키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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