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병리현상 되어버린 사교육비 문제
각자의 지식·능력을 나누는 공유모델로
더불어 사는 인간형 기르는 교육 실현
김성도 < 고려대 교수·언어학 >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세 가지 차원에서의 이유를 들어 한국 교육생태계의 지속불가능성을 주장했다. 이번 지면을 빌려 필자는 사교육비 절감을 통한 사회 경제적 효율성 제고, 창의성에 기반한 교육 내용의 혁신 그리고 나눔의 정신에 입각한 공유교육시스템의 시금석 마련 등으로 더불어 사는 인간형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가 ‘제3지대 교육협동조합’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이 교육 모델은 사교육비 해결을 위한 작은 날갯짓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지식과 교육의 공유경제 모델에 기초한 이 교육협동조합에 가입하는 회원들은 자신이 나눌 수 있는 지식의 분야, 수준,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제시하고 평가받는다. 평가액에 해당되는 가치는 자신 또는 직계 가족이 다른 회원이 제공하는 교육의 수혜를 통해 보전받을 수 있다. 이 교육협동조합은 공유경제라는 점에서, 모든 가치는 가상의 화폐가치로 평가되며 누구도 현금을 수수할 수 없고 자신이 제공하는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와 교육 기회를 가져갈 수도 없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교육협동조합에 가입한 대학교 수학과 교수 A, 중학교 영어 교사 B, 기업 회계담당 대리 C, 음대 졸업생 D가 있다고 하자. A, B, C 모두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며 D는 미혼 여성이다. 이들은 먼저 자신의 교육 분야, 수준, 할애 가능한 시간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는다. 예컨대 A교수는 주말에 중·고교생에게 3시간 정도 강의할 수 있다고 할 때 총 100만원의 가치를 평가받는다고 치자. 그는 이 가상의 교환가치 덕분에 중학생 아들이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권리를 부여받는다. 동일한 원리로 고교 교사 B는 주말에 10시간을 영어 교육에 할애해 그에 따른 평가가치를 인정받아 고교 2학년인 딸이 수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특정 지식교육 대신 특별한 능력을 평가받아 활용할 수도 있다. 회사원 C는 교육협동조합의 회계 또는 다른 사무에 일정 시간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가치를 평가받아 초등생 아이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한 D는 미혼인데 레슨 교육을 하고 평가받은 교육시간을 저축했다가 자신 또는 미래의 자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교육협동조합원은 누구도 현금을 수수하거나 사익을 취할 수 없으며, 자신의 교육평가 이상의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다. 또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현금 판매하지 못하며, 이를 어기면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다. 단,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식을 전수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순수기부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협동조합의 1차적 대상자는 교육자와 그 가족이 될 것이다. 현행법상 교수와 교사는 사교육 시장에서 경제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협동조합이 작동된다면 자신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을 상쇄하거나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공유모델은 교육자 이외 다른 직업층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이며, 이타적인 기부자 또는 일반 회원 가운데 자신의 평가가치의 일정 부분을 빈곤층 자녀를 위해 적립하고 기부하는 식으로 교육 수혜를 나누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초지능형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면 한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교육협동조합 시스템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협동조합은 자율성 독립성을 위해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 시장으로부터도 완전하게 독립돼야 할 것이다. 지역 상황에 따라 자치단체의 부분적 도움을 받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어떤 경우에도 간섭하면 자립적 교육협동조합의 정신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사교육비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게 엄중한 현실이다. 차기 정권의 주인공이 누가 되든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할 것이다. 누구든 상관없다. 필자의 제안을 한번 시도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감추지 않겠다.
김성도 < 고려대 교수·언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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