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2012년 963조원이던 가계부채는 매년 늘어 지난해 말 1344조원에 이르렀다. 4년 만에 39.6% 증가했다.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지난해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지난해 8월 가계부채관리대책을 발표하며 집단대출을 조이겠다는 방향을 밝혔다. 올 1월부터 개인별 여신심사를 강화했다. 최근엔 은행에 이어 2금융권이 집단대출 자체를 중단했다.
집단대출이 중단되자 건설업체가 아우성이다. 이 상태에선 분양 자체를 할 수 없다. 기존에 공급한 아파트의 집단대출처를 구하지 못한 곳도 많다. 계약자가 이탈하면서 건설사가 줄파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건설사들은 가계부채 가운데 절대적 비중이 크지 않고 연체율도 가장 낮은 만큼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값 하락에 취약한 국내 금융시장 특성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주택공급 통한 경기부양은 임시방편, 집값 하락 땐 건설·금융사 연쇄 부실
금리 오르면 가계부담 가중…대출 구조 개선 필요
국내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서면서 정부가 이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규제 카드를 내놓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의 주 원인으로 지목된 아파트 집단대출(중도금 대출)을 줄이기 위해 은행권은 물론 2금융권의 대출 문턱도 높였다. 그러자 일각에선 정부의 집단대출 제한 등 가계부채 규제가 경기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에서 풍선효과를 일으켜 서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가계부채 건전성 확보는 중·장기적인 경제체질의 질적 구조와 연계돼 있기 때문에 전 금융업권에 걸친 건전성 규제가 필요하다. 주택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은 미래 경제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기 어렵다. 과거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기에는 아파트 건설 활성화가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왔지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 지금 시점에 대량 주택공급 정책을 지속한다면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국내 주택금융시장은 집값 하락에 특히 취약하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자. 2011년엔 집단대출 연체율이 1% 내외로 낮았다. 2012년부터 수도권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집값이 떨어졌다. 이후 ‘하우스푸어’라는 용어가 시장에서 회자하고 건설 회사들도 잇따라 쓰러졌다. 2013년 1월 들어 집단대출 평균 연체율이 수도권 3.6%, 경기지역은 5.0%, 인천이 6.2%까지 치솟았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큰 외부 충격 없이 주택시장 침체만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주택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선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해 대출 건전성을 높이고 금융시장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지난달 2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최근 1~2년 사이 아파트 분양이 늘면서 중도금 대출 약정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집단대출은 부채 상환 능력이 없는 대학생에게도 수억원 규모의 대출이 일시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건설사뿐만 아니라 금융회사까지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택 시장 상황도 심상치 않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올해와 내년에 준공되는 주택 물량이 유례없이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2015년 한 해에만 주택 52만가구가 신규 공급되며 1990년 이후 최대 물량 기록을 갈아치웠고, 지난해에도 약 45만가구가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면서 국내 이자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제성장률은 2.5% 내외로 낮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며, 혼인·출산율이 떨어지고 베이비붐 세대는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등 주택 수요 여건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 수도권 담보인정비율(LTV) 한도가 50~60%에서 70%로 완화되면서 상한까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은행권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57.5%에 이른다. 금리가 인상되면 곧바로 이자상환 부담이 증가한다. 상한선까지 대출받은 한계 차주는 부채를 상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리 상승은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집값도 끌어내려 대출자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금리가 0.25%포인트 상승할 경우 주택가격은 0.38%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주택 경기 하방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전 금융업권에 적용하고 가계대출의 질적 구조개선 노력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집단 대출액, 총 가계빚의 9.7% 불과…증가율로 규제하는 건 '통계의 함정'
중도금·잔금 대출 규제는 실수요자 부담만 키워
지난해 말 기준 가계신용이 1344조원에 이르면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1.6%인데, 이는 유로존 평균(57.8%)과 영국(87.6%), 미국(79.4%), 일본(62.2%)보다 높아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집단대출 규제가 가계부채 건전성에 기여하고 있는가. 총 가계부채에서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규모와 부실 가능성을 따져보면 기여도는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분양단계에서 중도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서 벌어지고 있는 부작용이 더 커 보인다.
1금융권에서 2%대로 조달하던 중도금대출은 1금융권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2금융권으로 밀려났다. 조달금리는 3%대로 올랐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업자는 일부 5%대의 고금리를 지급하면서 중도금을 조달하고 있다. 최근 한국주택협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52개 사업장 중 대출협약을 완료한 사업장은 15곳에 불과하다. 3곳은 대출거부, 34곳은 대출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약 2만7000가구의 주택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추진하는 공공분양사업장의 대출협약도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집단대출 총 규모는 130조1000억원이다. 전체 가계신용의 9.7%에 불과하다. 중도금대출은 약 4.3%, 잔금대출은 5.2% 정도다. 반면 기타대출이 710조4000억원으로 전체 가계신용의 52.9%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타대출에 대한 관리 없이 4~5%에 불과한 중도금이나 잔금대출 규제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기는 어렵다.
정책당국은 집단대출 증가 속도가 문제라고 본다. 지난해 집단대출이 18% 증가해 가계신용 증가율(11.7%)보다 빨라 위험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집단대출은 한 해 동안 18% 증가했고 증가 규모는 19조8000억원이다. 지난 한 해 증가한 가계신용 141조2000억원의 14%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타대출이 73조6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가계신용 증가분의 절반 이상(52.1%)을 차지하고 있다. 집단대출보다는 기타대출 규제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부채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증가율만으로 규제 대상을 선정하는 것은 통계의 함정이다.
대출의 성격도 살펴야 한다. 2011년 이후 아파트 분양물량이 늘어나면서 중도금 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향후 분양물량이 줄어들면 중도금·잔금대출도 줄게 된다. 도시재생 등 정비사업이 활발해지면 이주비대출을 포함해 집단대출 총량은 다시 증가할 수도 있다. 집은 계속 일정량을 공급해야 하고 도시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시재생과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집단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해결해야 하는 모순이다.
집단대출 규제는 실수요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저금리의 중도금 대출이 어렵게 되면 사업자는 높은 금리를 지급하더라도 2금융권이나 지방은행을 통해 중도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금리부담이 높아진다. 이는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수분양자에게 이중부담으로 작동한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증가하는 총량이 과다하고 대출의 질이 나빠져 상환이 불가능해질 경우 경제적 파장에 대한 경계가 아닐까.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소비침체로 이어지는 문제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집단대출은 일반 가계대출과 속성이 많이 다르다.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시대적으로 필요한 주택공급과 도시재생사업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늘 수밖에 없는 집단대출을 받아들일 것인지다. 잘못된 규제정책은 시장에 독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은 없다. 항상 최선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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