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벤처 전략' 특별 심포지엄
[ 김봉구 기자 ] “일본의 재벌 2세, 3세들을 만나면서 깜짝 놀랐어요. 흔히 떠올리는 상속자 이미지와 다릅니다. 기업가정신이 아주 투철해요.”(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중국은 똑똑한 젊은이들이 창업하는 분위기가 확실히 잡혀 있어요. 능력이 되는데 왜 남의 회사에 가느냐는 거죠.”(박성호 에스브이인베스트먼트 대표)
지난 15일 한양대 경영관에서 열린 한국전략경영학회 춘계학술대회. 주말임에도 행사장이 꽉 찼다. 한국전략경영학회와 벤처기업협회가 공동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아산나눔재단·아모레퍼시픽·종근당·한솔홀딩스가 후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벤처 전략’ 특별 심포지엄 자리였다.
이날 심포지엄은 질의응답과 토론이 무척 활발했다. 청중이 질문을 쏟아냈다. 발표자들이 답하는 과정에서 생생한 현장 사례가 오갔다.
벤처창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일본에서 신기술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일본은 인구가 우리의 약 3배, 시장 규모는 5배 정도로 뭔가 시도해볼 여지가 있다”면서 특히 일본 재벌 2세, 3세의 기업가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중국의 성장세 못지않게 인상 깊은 대목”이라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성호 에스브이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중국 사례를 집중 언급했다. 그는 “베이징대 등 중국 명문대생들의 사고 자체가 취업보다 창업 쪽”이라며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의 가치와 보상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창업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짚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위기’를 맞은 한국의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결론은 간명했다. 벤처창업 활성화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도, 정부 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 바꿔나가자는 의견이 뒤따랐다.
행사를 기획한 송재용 한국전략경영학회장(서울대 교수·사진)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벤처 정책 수립, 생태계 구축과 함께 벤처기업들이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신속히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자금지원보다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길
국내 대기업-스타트업 관계 모두 완전히 바꿔야
자사 택시가 한 대도 없는 세계 최대 택시업체 우버,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 세계 최대 숙박업체 에어비앤비,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 세계 최대 콘텐츠업체 페이스북, 재고가 없는 세계 최대 리테일러업체 알리바바….
관건은 새 비즈니스모델이다. 안건준 회장은 “핵심경쟁력은 고도의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될 것이며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기업간 경쟁에서 플랫폼간 경쟁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벤처기업과 대기업의 파트너십, 적극적 인수·합병(M&A)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발표를 맡은 변태섭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은 정부 정책의 변화 필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권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기업에 하나씩 맡기는 ‘옛날 방식’을 썼다”고 되돌아본 그는 “핀란드의 ‘슬러시(Slush)’ 같은 민간 주도 창업경진대회 모델을 참조해 정부가 지원하되 관여하지 않는 모델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젊은 아이디어들이 제약 받지 않고 편하게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할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돼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랐다.
중기청장을 지낸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기존 요소공급형에서 벗어나 어떻게 시장을 조성할지에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한 벤처기업 대표도 “정부는 단기 자금을 대줄 게 아니다. 실력 있는 스타트업은 매출 5000억 원을 넘어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길을 닦고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등 큰 그림을 그려달라”고 당부했다.
벤처캐피탈 생태계 구축에 힘 쏟아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법 체계를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손질하자는 주문도 나왔다. 네거티브 방식은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을 일일이 규정하는 반면 네거티브 방식은 기업이 해선 안 되는 것을 규정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허용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자는 취지다.
토론자인 이병헌 광운대 교수는 “게임의 룰이 달라졌다. 정부가 초기 단계에 투자를 많이 하고 이후 단계에서는 손 떼고 민간에 맡겨야 자생력이 생긴다”며 “또 불공정행위는 규제하되 대기업과 신사업벤처의 협력 물꼬를 터줘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홍기범 전자신문 부장은 “아니다 싶으면 사업을 빨리 접을 수도 있게끔 창업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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