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끼리 멱살잡이에 직장에서도 편 갈려
'다름' 인정하지 않고 세대갈등 더 심해져
[ 성수영 기자 ]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사분오열돼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할 것 없이 지지 후보를 놓고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현상은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현직 대통령이 탄핵된 정치적 대사건을 겪으면서 정치 참여로 얻는 국민의 자기만족감(정치 효능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지지 후보의 선택을 가치관이나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선악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독선과 극단이 판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점점 커지는 ‘대선 갈등’
지난 1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이 발칵 뒤집혔다. 조문을 온 친척끼리 서로 지지하는 대선후보를 놓고 멱살잡이를 벌여서다. 이날 조문을 간 이모씨(29)는 “술을 마시던 두 친척 어른이 정치 얘기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싸움이 벌어졌다”며 “평소 점잖은 분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싸우는 걸 보고 이번 ‘대선 갈등’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성모씨(52)도 요즘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하는 성씨에 대해 아들(30)이 “안철수를 지지하면 적폐 세력과 다름없다”며 ‘꼰대’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같은 종교를 믿는 신도끼리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 다니는 최모씨(25)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만 교회에는 보수층이 많아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최씨는 “교회 모임에서 어른들이 적화통일을 막기 위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탄핵 심판 당시에도 일부 목사가 태극기집회에 나가라고 독려했는데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에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했다.
직장 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원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씨(27)는 요즘 직장에서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 후보 지지자인 박씨는 “회사에서 안 후보 지지자들이 공공연하게 ‘안 후보를 찍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며 “이런 사람 중에 상사가 많다 보니 찍힐까봐 회사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고 털어놨다.
탄핵 거치며 ‘확증편향’ 심화
이번 대선에서 사회 갈등이 크게 심해진 것은 탄핵 정국을 거치며 국민의 정치 효능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대선은 탄핵 국면의 연장선상”이라며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정치 효능감이 높아진 국민들이 저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핵 국면을 거치며 사회 전반의 확증편향이 가속화됐다는 분석도 많다. 광장에서의 짜릿한 승리감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오류의 기제를 강화시킨다는 설명이다.
지역 갈등이 완화되면서 세대 갈등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전 대선에서는 지역감정이 표심을 자극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이번엔 탄핵에 찬성한 20~30대 젊은 층과 이를 반대한 60대 이상 노년층 간 세대 갈등이 극대화됐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년층은 탄핵 선고로 가뜩이나 위축됐는데 자식 세대는 탄핵 인용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돼 세대 갈등 소지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모바일 시대로의 급속한 전환이 갈등 증폭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내 손 안의 인터넷이 동질적인 사람들끼리의 ‘집단 극화’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합리적인 정책 간 비교나 토론보다는 감정을 앞세운 자극적인 손터치로 주목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심화한 사회 갈등을 단기적인 정책으로 풀기는 어렵다”며 “소통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시민의식을 교육해야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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