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 기자 ] 1956년생인 엄마는 사업을 했습니다. 땅을 파고 건물을 올리는 일이었죠. 어릴 땐 잘 몰랐습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된 뒤 알게 됐지요. 얼마나 고단한 일이었는지를.
너무 당연하게도 엄마는 요리를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항상 제게 푸진 밥상을 차려주곤 했습니다. 그마저도 투정을 했었습니다. ‘맨날 된장국. 아님, 김치찌개라니.’
더러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시그니처 메뉴는 치즈밥. 소금 잔뜩 든 미국 V사 체더 치즈 한 장에 반숙 계란프라이 하나. 거기에 참기름 조금과 간장, 깨소금 약간. 잘 익는 김치와 함께 먹던 그 밥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지금도 ‘소울푸드’를 말하라면 망설임 없이 치즈밥이라고 합니다. 늘 바빴던 엄마가 후다닥 차려주던 10분 요리를요. 생각해보면 제겐 가정간편식의 원조였습니다.
그런 엄마가 몇해 전부터 요리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은퇴하고, 그즈음 백년손님도 생겨서였을까. 제철 재료와 건강 식단에 집착하며 메뉴를 고심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가 날 정도였습니다. 맛은? 답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 엄마의 요리 욕구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가족들이 ‘미각적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잇템’을 찾았습니다. 딱 알맞게 계량된 식재료와 소스, 셰프의 레시피북까지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배송해주는 ‘쿠킹 박스’입니다. 잘 씻어 다듬은 야채와 손질된 고기, 반조리된 해산물까지. 셰프만 빼고 다 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프렙박스(prepbox.co.kr)’입니다. 도산공원에서 그랑씨엘, 마이쏭 등을 운영하는 이송희 셰프가 만든 곳입니다. ‘엔쵸비 오일파스타’와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 등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하면 박스에 재료가 깔끔하게 담겨 도착합니다. 오전 7시까지 주문하면 저녁에 받아볼 수 있고, 날짜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굿잇츠(goodeats.co.kr)도 ‘10분 집밥’을 배송해 줍니다. 매운돼지갈비찜, 제육볶음, 조개버섯전골(사진) 등인데요. 포장을 뜯어 불에 올리기만 하면 끝입니다. 정기 배송을 하는 테이스트숍(tasteshop.co.kr)은 매주 1~2가지 메뉴의 재료와 레시피를 보내줍니다. 홈파티에 최적화된 프레시이지(fresh-easy.co.kr)도 있습니다. 6인분 기준의 매운 돼지갈비찜, 버섯전골 등이 들어 있습니다. 혼자 준비하려면 엄두가 안날 ‘손님맞이 세트’의 조리 시간은 단 100분.
외식 지겹고, 장 보자니 귀찮고, 인스턴트는 몸에 안 좋을 것 같고, 한번 도전해 보고픈 요리 왕초보들까지. 한번 해보시죠. 프렙박스를 받아 파스타에 도전한 엄마는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시더군요. 자, 그러니까 우리, 이제 조금 편하게 살자고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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