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층에선 물건 사지 말라?…롯데마트 서울 격전지서 파격 실험

입력 2017-04-26 14:21   수정 2017-04-26 19:00


# 정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무와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인 공간이 나온다. 중앙에는 야외 공연장을 연상케하는 커다란 계단식 의자가 있고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감싼다. 널찍한 실내 곳곳에는 언제든 앉아 쉴 수 있는 소파와 의자, 테이블이 놓여있다. 한켠에는 통유리를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실내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26일 문을 연 롯데마트 서울 양평점의 1층 매장 모습이다. 먹거리를 제외하곤 판매하는 물건은 어디에도 없다.

롯데마트가 서울 상권의 최대 격전지인 영등포에 12년 만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서울 내 대형마트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반경 3km 안팎에 코스트코, 홈플러스, 이마트 등 10여개 대형마트가 위치해있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만큼 후발주자인 롯데마트가 우위를 점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지역이다.

롯데마트는 기존 전략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매장 1층을 판매 목적이 아닌 휴식 공간으로 바꾸는 파격 승부수를 띄웠다.

◆ 양평점, 단독 매장으론 12년 만

이날 매장에서 만난 서현선 롯데마트 매장혁신부문 상무는 "고객이 이곳에 와서 어떻게 시간을 쓸 수 있을 지를 가장 먼저 고민했다"며 "쇼핑을 '일'이 아닌 '휴식'과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매장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1층은 세제·제지 등의 생필품과 과자·음료·주류 등의 상품을 판매하는 영업 골든존이다.

이와 달리 롯데마트 양평점은 700평 넘는 1층 공간 전체를 고객과 지역주민에게 내어 준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먹거리를 제외한 상품 매대는 전부 없애고 대신 테이블과 소파, 의자를 놔 어디서든 편하게 쉬고 얘기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인근 여의도와 마포에 직장을 둔 30대 여성을 주 고객으로 삼아 이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매장을 꾸몄다. 물건을 사러 온 곳이 아니라 마치 공원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서 상무는 "양평점의 1차 상권으로 보고 있는 양평동, 당산동, 문래동 20~30대 인구 비중은 전국 평균보다 8% 이상 높다"며 "이를 감안해 30대 고객이 와서 쉬고 즐길 수 있도록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양평점 1층에는 폴바셋(커피전문점), 마이타이(태국음식), 강가(인도음식) 등 유명 체인 음식점과 함께 개인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푸드 트럭도 입점해 있다.

롯데마트는 잘 알려지지 개인 사업자들과 지역 상인들을 1층 매장에 꾸준히 입점시킬 계획이다.

매장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구매 빈도가 가장 높은 식품을 취급하는 지하 2층으로 바로 이어진다. 많은 상품을 보여줘 구매로 유도하기보다는 고객 동선을 우선시 한 배려다.

식품 매장은 고객이 제품의 신선도를 잘 확인할 수 있도록 제품에만 조명을 주고 전체 조도는 낮추는 방식으로 섬세하게 구성했다.

지하 1층은 롯데마트 자체 의류브랜드인 '테'를 비롯해 다양한 의류와 잡화, 생활용품 등이 구비돼 있다. 육아와 출산에 필요한 상품을 모아놓은 '베이비저러스' 매장도 눈의 띈다.

지상 2층은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과 어른들도 좋아할 만한 키덜트 존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무선 자동차,와드론을 직접 작동해 볼 수 있는 시연 공간과 함께 증강현실(AR) 포토존도 마련했다.

◆ 월 매출 100억, 연간 1000억 목표

롯데마트가 서울 상권의 최대 격전지인 양평점에서 파격 실험을 하는 것은 국내 할인점 시장이 포화 상태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위기 의식에서다.

1인 가구 위주로 사회 구조가 바뀌고 있는데다 온라인·소셜커머스 가세로 채널 경쟁은 심해지면서 할인점 산업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할인점 시장 1위 사업자인 이마트도 올해 창립 24년 만에 처음으로 매장 수를 줄였다. 신규 점포는 열지 않고 적자 매장은 폐쇄하기로 했다.

신주백 롯데마트 MD혁신 상무는 "할인점 시장 상황을 보면 기존 콘셉트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는 소통하고 나누는 새로운 방식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양평점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도입하는 게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롯데마트 내부에서도 이같은 실험에 대해 '그게 비즈니스가 되겠어?'라는 의문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서 상무는 "양평점을 준비하기까지 3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았지만 혁신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에 다들 공감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양평점을 통해 월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고객이 찾아와 머무는 시간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구매 빈도와 단가도 높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생각이다.

신 상무는 "인근 코스트코 양평점은 아침부터 영업 끝날 때까지 고객들이 줄을 선다"며 "우리도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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