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변신한 게임업계 대부…10년째 한숨만 쉬는 사연

입력 2017-04-26 18:24   수정 2017-04-27 15:06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 개발한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

2006년 매입한 송도유원지
대규모 테마파크 지으려 했으나 인천시 인허가 번복으로 사업 무산

2012년 매입한 남양주 부지
골프장·주택건설 등 추진했지만 부지 매각사 '알박기'에 발목 잡혀



[ 윤아영 기자 ]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로 유명한 한국 게임회사 그라비티를 일본 회사에 4000억원에 매각해 벤처신화를 이룬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0년째 고전하고 있다. 오랜 꿈이던 대형 테마파크 사업을 위해 인천 송도와 경기 남양주에 토지를 매입했지만 행정당국의 인허가 번복, 알박기 등 국내 개발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알박기·인허가에 발목 잡혀

김 회장은 2005년 한국 기업으로는 두 번째로 그라비티를 미국 나스닥시장에 직상장했다. 이후 그라비티의 지분 52.4%(364만주)를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 투자회사에 4000억원을 받고 팔았다. 이후 디벨로퍼 행보를 보였다. 서울 논현동 성주빌딩, 인천 논현동 칼리오페 상가, 서울 서초구 아이파크1·2차 오피스텔 등이 싸이칸홀딩스를 거쳤다.

그러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싸이칸개발은 2012년 경기 남양주 덕소 월문문예관광단지 부지를 372억원에 매입했다. 이 부지는 중견건설사인 한신공영이 주택 개발사업을 하려다 공동 사업자와의 갈등으로 무산되자 공매로 내놓은 땅이었다. 2009년 행정자치부가 발전종합계획을 확정하고 2012년 남양주시가 시가화예정지구로 지정한 곳이다. 싸이칸개발은 이곳에 방송연구시설, 퍼블릭골프장, 테마파크, 고급주택 2000여가구 등을 짓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알박기’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알박기란 개발 예상 부지 내 일부 토지를 매입하는 행위다. 이 땅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어 디벨로퍼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많은 돈을 치르고 땅을 산다. 공매 부지 매각사인 한신공영이 100% 출자한 농업법인을 통해 사업부지 내 일부 땅을 경매로 매입했다. 지난 4일 경매로 나온 3개 물건을 감정가의 100~123% 수준에 낙찰받았다. 산속 깊이 있는 논과 밭이 보통 감정가의 50% 아래에서 낙찰되는 것과 비교할 때 이례적인 낙찰률이다.


김 회장은 “그 땅을 빼고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한신공영도 잘 안다”며 “한신공영이 비싸게 땅을 낙찰받은 것은 그보다 더 비싸게 우리에게 팔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두 차례 유찰된 뒤 경매에 참여하려 했다”며 “시공순위 18위 건설사가 알박기 형태의 투기행위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신공영 관계자는 “가치가 있는 땅이 경매에서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싸이칸홀딩스는 알박기에 대한 법적 조치와 미군공여지 특별법에 의한 강제수용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설상가상 환경부도 부지 주변 환경이 난개발로 망가질 우려가 있다며 개발사업을 막아섰다. 싸이칸홀딩스 관계자는 “남양주시의 시가화예정지구 지정을 믿고 토지 매입을 결정했다”며 “하루아침에 정부의 입장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송도유원지 개발계획도 번복

이에 앞서 2006년에는 계열사인 싸이칸개발을 통해 송도유원지(공시지가 885억원)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잠실 롯데월드처럼 대형 테마파크를 만들고 싶다는 김 회장의 오랜 꿈이 담긴 도전이었다. 인천시가 공동 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송도유원지 개발사업은 90만㎡ 부지에 호텔, 해수욕장, 캠핑장, 컨벤션, 대중골프장 등 복합 오락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공동 시행자인 인천시의 입장 변경으로 사업은 무산 직전에 이르렀다.

인천시는 이 지역을 2008년 관광단지로 지정했다. 그러나 1조5000억원가량의 민간 투자자 유치에 실패하고 인천도시공사가 재정난을 겪자 인천시는 2014년 사업을 포기했다. 장기간 사업이 방치되면서 올해부터 도시계획시설 해제 신청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인천시는 난개발을 우려해 현 상태를 유지하며 단계별 집행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개발사업이 무산돼 큰 손실을 봤는데 인천시가 재산권 행사조차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부회장은 “토지 용도 변경을 수반하는 개발사업은 돌발변수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어 디벨로퍼들이 LH가 마련해주는 땅에서만 사업을 하는 추세”라며 “LH가 그려준 그림대로만 사업을 하는 상황에선 경쟁력을 갖춘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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