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만양선으로 조선·해운 살려야

입력 2017-04-28 17:49  

"20년 넘는 노후선 교체 시급
고효율 선박 건조 국내에 발주해
안정적이고 강한 내수시장 구축을"

목익수 <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 >



1583년 어느 날 병조판서 율곡 이이가 선조를 찾아가 십만양병설(十萬養兵設)을 주장했다. 당시 조선의 남쪽에는 왜구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고, 북쪽에는 니탕개의 난으로 7개월간 함경도 일대가 소요에 휩싸이는 등 국방에 대한 새로운 대비책이 절실했다. 그러나 조정은 동인·서인으로 나뉘어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허송세월했고, 결국 율곡이 타계하고 8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백성들은 7년간 계속된 전란 속에서 도탄에 빠지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해운·조선업 현실을 바라보면 430여년 전의 뼈아픈 역사가 주는 시사점이 크다. 세계 7위의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을 위해 이미 정부와 채권단에서는 7조원가량을 지원했고, 추가로 수조원을 지원하는 안을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을 수립했지만 단기간에 5년 연속 적자를 탈피하기에는 난망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율곡의 십만양병설과 같은 획기적인 정책과 충무공의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 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조선의 총 병력 수는 장부상으로는 30만 명이 넘었으나 수군을 제외한 실제 전투 가능한 정예 육군상비군은 1000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하니 율곡의 주장은 단순히 군사 10만명을 새로 양성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강이 무너지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대를 제대로 된 10만의 강군으로 만들자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해운·조선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2016년 말 기준 한국에는 선박이 10만여 척이 있다. 상유십만(尙有十萬)인 셈이다. 12척의 배로 명량해전에 임한 그 당시와 비교하면 아직도 우리는 밑천이 두둑한 데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십만양선론(十萬養船論)은 우리가 지금의 십만 척을 효율적이며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차세대 선박으로 양선(養船)해 이를 기반으로 조선 세계 1위, 외항해운 세계 5위의 명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2015년 말 기준 20년 이상 된 선박만 내항어선이 1만2000여 척, 원양어선이 300여 척, 연안여객선이 50여 척, 그 외에도 내항 화물선·예부선 등 수백 척이 있다. 이 노후선들의 10%만 국내 조선소에 발주해도 국내 조선업계는 초호황을 누릴 것이다. 우리에게 10만 척의 배가 있지만, 낡았고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이고, 안전에 위협적인 노후선이 많다. 한시바삐 과감한 정책자금지원으로 10만 척의 중·소 내항선을 기반으로 안정적이고 강한 내수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연안 여객선의 경우만 해도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노후선을 교체해야 했지만 이를 수용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업계는 비용 부담을 이유로 외국에서 운항하던 중고선을 수입하거나, 건조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중국에 발주하려고 한다. 다행히 해양수산부에서 여객선현대화 자금지원을 위해 2016년부터 관련법령을 마련하고 2019년까지 약 1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나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아 올해까지는 3척 정도만 국내 조선소에 발주 가능한 실정이다.

어선에 대해서도 차세대 한국형 연근해 표준어선개발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시작한다. 2020년까지 국비 총 242억원을 들여 연근해어업 10개 업종별 조업특성 등을 반영한 표준어선을 설계·건조한 뒤, 시험조업 등을 거쳐 현장에서 보급하기 위한 ‘차세대 한국형 표준어선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 계획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과감한 노후선 교체정책과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430여 년 전 율곡이 주장했던 ‘십만양병’이 ‘십만양선’으로 부활해서 무너져가는 우리의 조선·해운을 되살리는 기반이 되길 바란다.

목익수 <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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