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약세 방어막 높이던 중국…또다시 기업·자본 '엑소더스' 우려
"미국에 세율 역전, 기업경쟁력 약화"
중국 재계, 법인세 인하 요구 커질 듯
[ 베이징=김동윤 기자 ] 미국이 지난 26일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세계 최저 수준인 15%로 낮추겠다고 발표하자 중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감세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면 미국 법인세율은 중국(25%)보다 낮아진다. 세율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로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이익을 본국으로 대거 송금하거나, 중국 기업이 경쟁적으로 미국에 공장을 신설하면 중국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자본유출 악몽 우려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법인세 인하가 중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둘러싸고 중국 내 경제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법인세 인하 계획의 골자는 법인세 과표구간을 단일화해 최고 35%인 세율을 15%로 인하하고, 해외에 쌓아둔 유보금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미국 기업에 일회성 특별세율(약 10% 예상)을 적용하는 것이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미 기업은 전체 해외 수익의 최소 25%가량을 중국 시장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그동안은 미국 법인세율이 중국보다 높아 중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미국으로 가져가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슈안레인 차이나마켓리서치그룹 이사는 “미·중 간 법인세율이 역전되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며 “중국에 잠겨 있던 미국 기업 유보금의 ‘차이나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2년 새 위안화 약세에 따른 급격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해왔다. 그 결과 줄곧 감소세를 보이던 외환보유액도 지난 3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SCMP는 “미국의 법인세 인하로 한동안 잠잠하던 자본유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가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닝 칭화대 금융연구소 부소장은 “세율이 역전되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려는 중국 기업이 급증할 수 있다”며 “이는 결국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 약화와 수출 둔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제조업 세금 부담, 美보다 커”
중국도 지난해부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각종 감세정책을 시행해왔다. 작년 5월에는 영업세를 부가가치세로 통합하고, 각종 행정 수수료 면제 범위를 확대해 기업의 세금 부담을 총 5000억위안(약 82조5000억원)가량 줄여줬다.
올 들어서는 이달 20일 현행 4개 등급으로 나뉜 부가세 세율을 3개 등급으로 통합하고, 법인세 감면 대상 영세기업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법인세는 인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왔다.
SCMP는 그러나 “미국의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안 발표에 힘입어 법인세 인하를 요구하는 중국 재계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재계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인 작년 말 법인세 인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중국 최대 알루미늄업체 푸야오그룹의 차오더왕 회장이 1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제조업체의 세금 부담은 미국 기업보다 35%가량 높다”고 발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중국 최대 음식료업체 와하하그룹의 중칭허우 회장도 “중국의 실물경제는 어려운데 생산원가 부담이 너무 높다”며 “정부는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줘야 한다”고 지원사격했다.
일부 전문가는 미국의 법인세 인하가 중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을 제기했다. 아이단 야오 악사인베스트먼트 아시아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원래 홍콩 싱가포르 같은 조세피난처가 아니었다”며 “중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기업 대부분은 벌어들인 수익을 중국 시장에 재투자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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