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스하키 1부리그 승격 '키예프 기적' 일군 백지선의 마법

입력 2017-04-30 18:57  

연장 승부치기 혈투 끝에 우크라이나에 짜릿한 승리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 진출

NHL 스타출신 백지선 감독
기본기 다지고 강철체력 무장…아이스하키 '변방국의 반란'

정몽원 회장 아낌없는 지원…백지선 감독 영입 '신의 한수'



[ 최진석 기자 ]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리그) 대회 최종전(5차전)이 열린 지난 29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제치고 승리하자 백지선(영어명 짐 팩·50) 감독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선수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백 감독에게 모여들었다.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슛아웃까지 가는 혈투 끝에 2-1(승부치기 1-0)로 꺾고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톱 디비전)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세계 랭킹 23위에 불과한 한국이 세계 최고 레벨의 16개국이 나서는 월드챔피언십에서 경쟁하게 된 것이다.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를 새로 쓴 ‘키예프의 기적’이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승격’

한국은 슛아웃에서 골리(축구의 골키퍼) 맷 달튼의 선방 속에 마이클 스위프트와 신상훈의 페널티샷 성공에 힘입어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입성을 확정했다.

한국은 앞선 4차전에서 오스트리아에만 0-5로 패했을 뿐 폴란드(4-2 승), 카자흐스탄(5-2 승), 헝가리(3-1 승)를 모두 꺾었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3승 1연장승 1패, 승점 11점의 역대 최고 성적표를 적어냈다. 오스트리아(4승 1패·승점 12점)가 대회 정상에 섰고, 한국은 카자흐스탄(3승 1연장승 1패·승점 11점)과 승점이 같으나 승자승을 우선시하는 대회 규정에 따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2장의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승격 티켓을 나눠 가졌다. 한국은 내년 5월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8 IIHF 아이스하키 월드챔피언십에서 캐나다, 러시아, 미국 등 세계적인 강팀과 대결을 펼치게 됐다. 백 감독은 경기 후 “우리는 오랫동안 강팀들과 경기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협회 파격 후원

백 감독의 말대로 한국 아이스하키의 과거를 살펴보면 월드챔피언십 진출은 기적이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2006년과 2010년 동계올림픽 지역 예선에도 출전하지 않았다. 실력도 부족한데, 괜히 나갔다가 돈은 돈대로 쓰고 망신만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백 감독이 2014년 7월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백 감독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스탠리컵(우승컵)을 두 차례나 들어 올린 세계적인 수비수다. 백 감독은 먼저 비디오 분석과 함께 선수들에게 세부적인 전술이 담긴 가이드북을 나눠줬다. 그전까지 대표팀엔 전술 가이드북도 없었다. 기본기부터 다져나간 백 감독은 기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체력을 덧입혔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소화한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을 앞세워 두 차례 역전승을 거뒀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간 백 감독은 1990년대 초반 NHL 명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맹활약했다.

백 감독을 영입한 것은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이 지원한 결과였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2013년 1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취임한 뒤 아낌없이 지원해 아이스하키 기적을 일궈냈다. 정 회장은 국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핀란드 2부 리그에 20대 초반 선수 10명을 파견해 경험을 쌓게 했다. 또 일본을 설득해 상무를 아시아리그에서 뛸 수 있게 하며 선수들 생명을 연장시켰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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