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지천인 '천상의 화원'
광부의 고단한 삶 새겨진 삼탄아트마인 둘러보고
정암사·야생화공원도 매력 만점
[ 최병일 기자 ] 고즈넉한 봄길은 걸어서 가도 좋고 차를 타고 다녀도 좋다. 봄 향기가 그윽한 날 정선 만항재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만항재는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곳으로, 정상이 해발 1330m에 이른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턱밑까지 올라, 정상에 서면 첩첩이 이어진 백두대간의 고산준봉(高山峻峰)이 어깨쯤에서 물결친다. 사방이 탁 트인 일망무제(一望無際)다. 짧은 그림자로 사라지는 봄을 깊이 느끼고 싶다면 뱀장어처럼 매끈하게 지나가는 만항재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사계절이 아름다운 환상의 코스
고한 상갈래 교차로와 태백 화방재(어평재)를 잇는 414번 지방도는 만항재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늘 아래 첫 고갯길’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고원 드라이브 코스의 정수로 꼽힌다. 만항재가 보여주는 풍경이 그만큼 장쾌하고 근사하다. 길은 고갯마루를 기준으로 고한과 태백으로 약 8㎞씩 이어진다. 가끔 180도로 휘도는 구절양장에 탄성이 나온다. 이왕이면 고한에서 올라 화방재 방면으로 내려가자. 올라갈 때는 정상 부근의 낙엽송 군락이 군중처럼 환호하고, 내려갈 때는 태백산 봉우리가 눈앞을 가득 채워 황홀하다. 마치 겹겹이 이어진 산 물결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만항재는 사계절 풍광이 아름답다.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고, 겨울이면 눈꽃이 만발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으로도 유명하다. 어디 사계절뿐이랴. 만항재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이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 별을 좋아하는 이는 야밤에 이곳을 찾아 은하수를 만나고, 호젓한 드라이브를 꿈꾸는 이는 새벽에 이곳을 찾아 선물 같은 아침을 맞는다. 고도가 높은 만항재는 이른 아침에 안개가 자주 몰려와 몽환적이다.
광부들의 삶이 깃든 만항재의 매력
만항재 드라이브의 또 다른 매력은 풍성한 볼거리에 있다. 길이 시작되는 상갈래 교차로부터 삼탄아트마인과 정암사, 만항야생화마을, 만항야생화공원 등이 줄을 잇는다. 모두 도로변에 있어 오래 걷지 않아도 된다.
상갈래 교차로에서 2㎞ 정도 거리에 있는 삼탄아트마인은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하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를 활용한 문화 공간이다. 만항재가 20여년 전까지 석탄을 실어 나른 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으로, 길목에서 산 중턱에 우뚝 솟은 수갱 타워(권양기)가 보인다. 수갱 타워는 광부와 석탄을 지상과 지하 갱도로 옮기던 삼척탄좌의 승강 시설로, 삼탄아트마인의 심장 같은 곳이다. 본래 있던 짙은 회색 레일 위에 붉은 꽃 세 송이를 설치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촬영한 마인갤러리4와 석탄산업의 현장인 야외 공간도 눈에 띈다. 광차와 인차, 버스 등을 전시하는 야외 공간에서는 경석(폐탄)이 언덕을 이룬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구불구불한 만항재를 따라 이야기로 흐르는 느낌이다.
마을에서 차로 한 굽이 크게 돌면 만항재가 나온다. 정상 푯돌을 기준으로 왼쪽에 ‘하늘숲공원’이, 오른쪽 아래에 ‘천상의 화원’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피고 지는 곳으로, 해발 1000m 이상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가 많다. 이른 봄 눈 속에서 노란 복수초가 피고 봄에는 얼레지, 여름엔 노루오줌이나 둥근이질풀 등이 흐드러진다.
운탄고도와 연계한 걷기 좋은 길
만항재 정상에서 함백산과 운탄고도가 지척이다. 함백산은 둥글둥글한 산세만큼이나 품이 넉넉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지만, 만항재와 고도 차가 240여m에 불과해 정상까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겨울철 눈꽃 산행지로 유명하고, 일출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산행 기점은 태백선수촌 부근 도로 옆 주차장이다. 이곳에 차를 대고 임도를 따라 1㎞ 남짓 오르면 된다(5월15일까지 입산 통제).
함백산이 만항재 드라이브와 연계할 수 있는 산행 코스라면, 운탄고도는 연계해 걷기 좋은 길이다. 운탄고도는 ‘석탄을 나르던 옛길’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고원 길’이라는 뜻이다. 석탄 트럭이 왕래하던 길이라 대체로 넓고 완만해 걷기 좋은데, 전체 구간은 함백역에서 만항재까지 40㎞다. 하늘마중길, 바람꽃길, 낙엽송길 등 난도가 다른 10여개 코스가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진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메모
굿스테이인 하이랜드호텔은 깔끔하고 시설도 좋다. 삼탄아트마인은 전시공간이면서 숙박도 할 수 있다. 오투리조트도 시설이 좋다.
곤드레나물 위에 고등어를 놓고 찜을 한 곤드레고등어찜은 향도 좋고 맛도 깔끔하다. 만항곤드레닭집이 잘한다. 곤드레로 만드는 또 다른 음식은 곤드레 순대국밥이다. 원조순대국밥에서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다. 만항할매닭집은 닭볶음탕으로 유명하다.
사북석탄유물보존관(사북탄광문화관광촌)은 탄광의 역사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화사한 꽃이 만발한 민둥산과 화암동굴도 꼭 둘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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