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상속 정당성 여부는 시장이 평가할 일
사회 안전망? 필요성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론 임금으로 돌보는 게 맞아
청년 실업, 시장 잘 돌아가게 놔두면 풀려
기업가 역할·시장 작동 원리 가르치는 게 중요
[ 이상은 기자 ] 이즈리얼 커즈너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87)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일원이다. 이메일도, 컴퓨터도 쓰지 않는 그가 오는 7~10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몽펠르랭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MPS) 서울총회’에서 타자기로 친 ‘순수 기업가정신의 윤리: 오스트리아 학파의 관점’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커즈너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로 꼽히는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견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프리드먼이 기업가 외에도 생산에 기여한 이들이 일정한 몫을 받아가는 점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했다”며 이는 ‘자본주의의 정의’에 대한 적절치 못한 설명이라고 논박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실업의 해법은 고용과 해고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매우 원론적인 시장경제 해법을 강조했다. 사회안전망 등에 관한 비판도 직설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시스템에 회의적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교조적인 느낌보다는 학자로서의 신념이 강한 것 같았다.
▷순수 기업가 이익(pure entrepreneurial profit)이라는 표현이 생소하다. 어떤 뜻인가.
“기업가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사람이다. 시장에서 무시되는 영역,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 기업가다. 사람들은 뭔가 실수를 한다. 진짜 수요를 발견하지 못한다. 기업가는 그 점을 간파한다. 그리고 순수한 기업가의 이익은 그런 발견을 한 데 따른 대가다. 예컨대 100원어치 부품, 100원어치 인건비, 100원어치 관리비 등 총 300원의 비용을 들여서 1000원의 가치를 지닌 물건을 생산한다면, 그런 결정을 내린 기업가가 총가격에서 비용을 뺀 이윤 700원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다.”
▷기업가가 혼자 그런 생각을 해내는 일은 드물지 않은가. 예컨대 여럿이 함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린다면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구분할 수 있는가.
“내가 말하는 ‘순수 기업가 이익’은 ‘순수 기업가정신’에 따른 대가다. 한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론상 기업가정신에 따른 대가가 단순 노동력·자본·원자재 등에 따른 대가와 구별될 수 있으며 그 대가는 시장을 발견한 기업가에게 귀속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현실의 기업가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렇다. 현실에서는 기업가가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하고, 자본을 대기도 하며, 기업을 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이런 서비스 제공이나 자본 제공에 따른 대가(기업의 비용)와 순수한 기업가 역할에 따른 대가(순수 기업가 이익)를 나눠서 볼 수 있다.”
▷기업가의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인가.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기업에서 돈을 많이 받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그것이 기업가정신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창업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2세, 3세가 기업을 물려받거나 요직에 앉는 것도 정당화되는가.
“정당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시장에서 할 것이다. 순수 기업가 이익을 가져가기 위한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판단에 문제가 있다면 시장이 그것을 판단하고 기업의 가치를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사회가 그것을 규제하는 것엔 반대하는가.
“불필요한 일이다. 시장이 판단하게 둬야 한다.”
▷순수 기업가정신에 관한 이론은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 대신 새로운 시장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블루오션 전략’ 개념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영역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볼 수도 있다.”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로 몸살을 앓는 나라가 많다.
“불평등은 피할 수 없다. 실업 문제의 해법은 경쟁이다. 고용과 해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다면 사람들이 제공하는 노동력 서비스가 시장에서 활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노동조합 등의 존재가 경쟁을 저해하고 물가를 올린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그렇다. 그러나 사회는 가족이 아니다. 연민과 우려를 보여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가 구성원을 돌보는 수단은 (노동력 제공에 따른) 임금이다.”
▷보호 수단이 불필요하다는 뜻인가.
“내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 사회는 구성원이 내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보호장치를 마련한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기업가정신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경제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시장에서 지금 주목받지 못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본인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웃음) 나는 내 일생을 그 일에 썼다.”
■ 이즈리얼 커즈너 누구인가
이즈리얼 커즈너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87)는 영국에서 유대인 랍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장했으며 지금은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뉴욕대 재학 시절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의 수제자가 됐다. 《경제적 관점》(1960), 《경쟁과 기업가정신》(1973), 《시장 과정의 의미》(1992) 등 여러 책을 썼다. 아버지처럼 랍비로 임명됐으며 뉴욕에서 랍비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30년 영국 런던 출생 △1952~1954년 뉴욕 브루클린칼리지 학사 △1954~1957년 뉴욕대 경영학석사(MBA), 박사학위 취득 △1968~2001년 뉴욕대 교수 △2001년~ 뉴욕대 명예교수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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