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그렇게 큰 돈은 못 내"
EU-영국, 극심한 견해차
EU "백지수표는 아니지만…분담금 문제 진전 있어야"
영국 "구체적 요구액 전달 못받아"…조기총선 직후 협상 '배수진'
[ 박상익 기자 ]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본격적인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앞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EU 각국 정상은 “영국은 브렉시트 과정에서 유리한 것만 챙길 수 없다”며 “이전에 약속한 EU 분담금을 모두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EU의 요구만큼 ‘브렉시트 위자료’인 분담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조기총선(6월8일)이 끝나고 본격적인 탈퇴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했다. 협상 만료 기한인 2019년 3월까지 22개월간 영국과 EU의 기세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이 낼 위자료는 1000억유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렉시트 협상 강경파인 독일과 프랑스의 요구를 반영해 분석한 결과 EU가 영국에 요구할 금액이 당초 600억유로(약 74조원)에서 400억유로 많은 1000억유로(약 123조원)로 추산된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영국이 브렉시트로 10년간 부담할 분담금은 910억~1300억유로 정도며 영국이 내지 않아도 되는 EU분담금과 EU 융자금 상환 등 최소한을 고려하면 560억~750억유로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처음 예상치보다 금액이 오른 것은 EU 각국의 이해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폴란드 등은 이 브렉시트 위자료에 농업보조금 100억~150억유로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영국에 대한 EU 자산 분배를 반대하며 우크라이나와 포르투갈 등은 우발채무 및 대출 등에 대한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브렉시트에 따른 EU의 행정비용까지 포함돼 영국에 지울 부담금 규모가 늘어났다.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대표는 3일 브뤼셀에서 “영국의 분담금 문제에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며 “영국이 얼마를 내야 할지 지금은 추정할 수 없지만 백지수표에 사인하도록 요구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영국 협상 대표인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 장관은 FT의 추정치에 대해 “500억유로, 600억유로, 1000억유로 같은 수치가 들리지만 아직 EU에서 전달받은 것은 없다”며 “(영국은) 1000억유로를 내지 않을 것이고 협상이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6월부터 브렉시트 본협상 시작
브렉시트 공식 일정은 영국이 지난 3월29일 EU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면서 시작했다. EU는 협상 권한을 바르니에 대표에게 위임했다. 영국은 데이비스 장관을 대표로 EU와 협상을 벌인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협상 시작 D데이는 오는 6월12일께다. 지난해 6월 영국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에 찬성한 지 1년 만이다.
지난해 7월 총리 자리에 오른 메이는 EU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에서도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 방침을 천명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관철하기 위해 의회에 6월 조기 총선을 요청했다. 집권 보수당이 압승하면 EU와의 협상에서 더욱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EU 분담금 놓고 견해 달라
메이 총리는 이날 조기총선 유세 연설에서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는 자신들을 위한 협상 타결이란 의지로 뭉친 27개 EU 회원국이 앉아 있다”며 “영국 국익을 위해서라면 우리도 역시 단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날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동료 한 사람이 나를 ‘정말 까다로운 여자’라고 표현했는데 그걸 알게 될 다음 사람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라 답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메이 총리가 지난달 27일 융커 집행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영국이 ‘위자료’로 600억유로를 낼 아무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융커 위원장은 이튿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 “메이가 다른 세상에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 간 극심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브렉시트 합의가 기한 내 27개 EU 회원국과 유럽의회 비준을 받으려면 적어도 내년 10월이나 11월까지 영국과 협상을 마쳐야 한다. 브렉시트 협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도 영국은 협상 기한 만료와 동시에 EU를 자동 탈퇴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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