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도쿄 시내에선 어렵지 않게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날 수 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6월 출시한 ‘페퍼’다. 판매 1분 만에 초도 물량 1000대가 완판돼 화제를 낳은 페퍼는 커피전문점, 아이스크림 가게, 초밥집 등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아직 음식값을 계산할 정도로 지능적이지는 않지만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까지 하는 로봇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다.
로봇에 일자리 맡기는 일본
페퍼는 애완동물처럼 가족들에게 친구 역할을 하는 로봇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산업용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엔 패션쇼에서 모델 역할까지 해냈다. 페퍼의 활약은 일본의 심각한 구인난과 무관치 않다. 인력 부족도 해결하고 인건비도 줄이려고 페퍼 도입을 늘리고 있다.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아직 남의 나라 얘기다. 하지만 페퍼가 서울에 올 날도 그리 머지않은 듯하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거세게 몰려오고 있어서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겐 기회다. 인공지능(AI), 3D 프린팅,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들이 아직 시작단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에비터블》의 저자인 케빈 켈리가 “향후 30년 동안 삶을 지배할 중요한 기술은 아직 창안되지 않았다”고 단언했을 정도다.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경쟁력이 건재한 우리로선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 우리의 사회시스템과 제도, 통념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차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불거지고 있는 ‘트롤리 딜레마’가 대표적이다. 다수의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율주행차가 운전자를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는 윤리적인 딜레마다. 3D 프린팅과 이종장기 키메라를 통한 인공장기, 유전자 가위 기술 등도 생명윤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회 갈등과 혼란 최소화해야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데 따른 사회적 갈등도 불가피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 향후 5년 내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도 인공지능 등에 밀려 일자리를 뺏길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사회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둘러싸고 성별, 세대별, 직능별 갈등이 격화될 게 뻔하다. 변화에 뒤처진 기업이나 업종은 줄줄이 사라질 것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이 예견한 것처럼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은 상상을 초월할 가능성이 크다.
다행스러운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대선후보들의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는 점이다. 전담 조직이나 부처를 신설하고 전문 인력 양성에도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는 최선책은 기업들의 손발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교육 노동 복지 등 전반에 걸친 제도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전담 부서를 만든다고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명확한 비전과 철학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사회 갈등만 부추길 공산이 크다. 4차 산업혁명 정책은 사회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광화문과 서울광장이 또다시 극단적 분열과 갈등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
박영태 바이오헬스부장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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