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대표 "압축선거 땐 지지층 결집이 효과적"

입력 2017-05-09 21:11  

정치컨설팅업체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

여론조사·전략조언 등 사업 펼쳐
"선거기간 예전의 4분의 1 수준, 섣부른 중도확장전략은 실패해"



[ 임근호 기자 ] “이번 대통령 선거는 ‘압축 선거’였어요. 여러 후보가 이런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지지율이 중간에 고꾸라졌습니다.”

대선 당일인 9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사진)를 만났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전략컨설팅·정책과제 연구 등을 하는 업체다. 엄 대표는 의원 보좌관,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2014년 시대정신연구소를 세웠다.

시대정신연구소는 작년 8월 펴낸 《반기문은 없다》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후보가 되기 어렵고, 대선에 나와도 당선되기 어렵다고 예측해 날카로운 분석력을 뽐냈다. 엄 대표는 “반 전 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압축 선거에서 제대로 전략을 짜지 못 했다”고 평가했다. “반 전 총장은 석 달 만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왔어요.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어떤 정당과 함께할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죠.”

이 시장과 안 지사는 ‘우클릭’이나 ‘선의’ 발언 같은 섣부른 중도 전략이 패착이 됐다고 분석했다. 야권 대선후보가 되려면 2040세대를 잡아야 하는데, 집토끼(고정지지층)도 잡고 산토끼(부동층)도 잡겠다는 전략으로 이를 놓쳤다는 것이다. 핵심지지층은 이탈을 막고 부동층을 일부 끌어오는 전략을 펴야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 번 전략적 실수를 하면 이를 만회할 시간을 갖기 힘든 것이 이번 대선이었다”며 “이 때문에 민심의 변화폭이 컸고 유력 주자들의 부침이 심했다”고 설명했다.

엄 대표를 만날 때 대선으로 ‘선거 특수’를 누리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 특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압축 선거 탓이었다. 그는 “경선을 포함해 보통 1년 걸리는 대선이 이번엔 두세 달 만에 끝났다”며 “관련 시장 규모도 예전 대선의 4분의 1 정도로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세론’이 일찍부터 굳어졌고, 당내 경선에서도 대부분 1위가 확정적이다 보니 여론조사나 정치컨설팅 수요가 여느 대선만큼 많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층이나 여성은 언더독(이길 가능성이 적은 약자)에 연민을 느껴 표를 주는 경향이 있어요. 안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갑질하는 것처럼 공격할 때 이들이 떨어져나가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소속 의원 12명이 탈당했을 때 20대 지지율이 오른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정치 컨설턴트로서 그가 보는 한국 정치권의 문제는 무엇일까. 엄 대표는 “옛날과 비교해 요즘 대선후보들은 권력 의지나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며 “스스로 꿈을 갖고 대통령이 돼 나라를 바꿔보려 하기보다는 주위의 권유와 기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통령에 출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도 창업자에 이어 2세가 사업을 물려받을 때 위기가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대통령도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스스로 성취를 이룬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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