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첨단 기술로 글로벌 시장 개척하는 한국형 히든챔피언들

입력 2017-05-11 17:41  

Cover Story ▶관련기사 B 4, 5면
우수기술연구센터협회

세계시장 주름잡는 강소기업
지재권 185건 보유 상아프론테크
'슈퍼플라스틱' 제품 수출 앞장

직원 절반 R&D인력 고영테크놀로지
3차원 전자부품검사장비 '최강자'

ATC 자금 지원이 큰 힘
업체당 최대 5년간 연 5억원 지원
"기업 R&D 자율성 최대한 존중"



[ 김낙훈 기자 ]
남동산업단지에 있는 상아프론테크(사장 이상원)는 불소수지를 비롯한 슈퍼엔지니어링플라스틱을 원료로 다양한 첨단 부품·소재를 만드는 업체다. 슈퍼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내열성 내화학성 등이 뛰어난 플라스틱이다. 이 회사의 생산 제품 중 상당수는 수입품을 국산화했거나 처음 개발한 것이다. 이들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재봉틀 노루발을 금속 대신 불소수지 소재로 개발한 데 이어 자동압축성형기를 비롯해 열수축튜브, 웨이퍼 캐리어, LCD(액정표시장치) 카세트 등을 속속 국산화했다. 레이저 프린터용 ‘트랜스퍼(전사) 벨트’도 개발했다. 트랜스퍼 벨트는 현상된 이미지로 얻은 화상의 토너를 종이로 옮기는 기능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를 국산화한 뒤 해외 유수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작년 12월엔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이상원 사장은 “트랜스퍼 벨트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기술연구센터(ATC) 지원 자금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지금 ATC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회사의 국산화 밑바탕엔 적극적인 연구개발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회사는 전체 직원 530명 중 16.2%인 86명을 연구개발부서에 배치하고 있다. 총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쏟아붓는다. 독일의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이 매출의 평균 6%, 포천 500대 기업이 3.6%를 투자하는 데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특허권 132건 등 지식재산권 185건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에도 적극 나서 해외 4곳(중국 3곳, 말레이시아 1곳)에 공장을 두고 현지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고영테크놀러지(사장 고광일)는 1800개 글로벌 기업에 3차원 전자부품 검사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적 자동차부품업체인 독일 보쉬에는 10년간 납품한 데 이어 지난해 또다시 5년간 납품계약을 맺었다. 이 제품으로 세계 최강에 등극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외 세 곳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열었다.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고광일 사장은 “남보다 항상 두 걸음 앞서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남들이 안 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남들이 따라오기 전에 성능이 월등히 향상된 제품을 개발하는 식이다. 작고 민첩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강점을 살린 것이다. 뇌수술을 돕는 3차원 로봇을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인력은 전체 국내 직원의 약 절반에 이른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015년보다 17.7% 늘어난 1718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성과도 연구개발에 힘입은 것이다. 전체 매출의 87%를 해외에서 일궈냈다.

상아프론테크와 고영테크놀러지의 사례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기술력과 글로벌 시장 개척이다. 이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독일의 레이저가공기업체인 트럼프나 청소기업체 카처, 로봇업체 쿠카 등은 나만의 독창적인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기업가정신과 과감한 제품 개발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중 ATC 자금이 한몫했다. 업체당 최장 5년 동안 최대 5억원(연간)을 지원하는 자금이다. 특이한 것은 이 자금으로 개발하는 기술을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점이다.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보텀업(bottom-up)’ 방식이다. 시장을 기업만큼 잘 아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돈 되는 분야가 무엇인지 하루 24시간 추적하고 연구한다. 이런 생리를 감안해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은 우수기술연구센터협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공부하는 모임이다. 경영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협회 회원사는 251개에 이른다. ATC 자금을 지원받은 업체들이 회원 가입 자격을 갖고 있다. ATC 자금은 2003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로 15년째다. 피팅류의 강자 유니락을 비롯해 뷰웍스 모비스 대주전자재료 알에스오토메이션 크래비스 등도 회원사다.

이들 기업의 대표들은 협회 일에 적극 참여한다. 미래산업에 대한 토론을 통해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만 모이는 게 아니다. 회원사들은 기술 개발을 중시하기 때문에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의 모임도 운영한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해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융복합 기술 개발 등에 관심을 갖고 토론하고 고민한다.

이철 ATC협회장(에이스기계 사장)은 “국내외 경영 여건이 어렵다고 하지만 기술력이 있고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며 “우리 회원사는 이런 정신을 충만한 기업인들”이라고 말했다.

IBK연구소장 출신인 조병선 숭실대 중소기업 대학원 겸임교수는 “독일 기업은 독보적인 기술력과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는 두 축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이런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강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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