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 기자 ] “환자는 약효와는 무관하게 먹는 약이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색깔만 바뀌어도 심리적 부담을 갖게 마련이다. 이런 요인들을 지나치게 재다 보면 불법 리베이트를 없애겠다고 만든 건강보험 급여정지 징계가 항암제 등 중증질환 치료제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가 의사 등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된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 의약품에 급여정지 처분을 하지 않고 과징금으로 대체한 것을 두고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뒷말이 무성하다.
복지부는 백혈병약 글리벡 등 급여정지 처분 대상인 노바티스 의약품 42개 중 33개 품목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6개월 동안 급여정지 처분을 내린 품목은 9개에 불과했다. 급여정지 처분을 받으면 환자가 부담해야 할 약값이 3~20배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보험급여 대상이면서 약효가 같은 제네릭(복제약) 등으로 복용약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급여정지 처분은 시장 퇴출 효과가 있는 강력한 처벌이다. 반면 과징금 처분은 시장에 주는 영향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번에 과징금 처분금액이 급여정지 기간을 고려해 연간 요양급여비용의 30%로 결정됐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복지부가 노바티스에 과징금 처분을 결정한 이유도 석연찮다. 복지부는 중증환자가 급여정지 때문에 기존에 먹던 약을 다른 약으로 바꾸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암과 뇌전증 환자,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가 먹는 약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이는 정부 스스로 의약품 정책을 부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오리지널과 같은 약효를 인정받은 제네릭에 허가를 내주는 의약품 인허가 정책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징금 처분으로 갈음한 약은 대부분이 오리지널이었다. 오리지널이 제네릭보다 좋은 약이라는 인식만 심어줬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값을 낮추는 정책도 ‘약발’이 떨어지게 됐다. 비싼 오리지널 약 대신 싼 제네릭을 처방하는 약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대체조제 인센티브 제도가 그렇다. 원칙을 잃은 정부가 나쁜 선례만 남긴 건 아닌지 염려된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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