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경제부 기자) “허허…. 옛날 생각이 나네요. 1990년대 들어 유니폼이 사라졌으니 1980년대 은행원들이 입었던 옷입니다.” 한국은행 한 임원은 추억에 젖은 듯 유니폼을 바라보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1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1층 로비. 희끗희끗한 흰머리의 ‘한은맨’들이 한 명 두 명씩 로비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날은 한은이 ‘추억의 사진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은의 변천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본관과 별관 등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시대별로 전시가 됐습니다. 창립 67주년인 다음달 12일까지 개최된답니다.
한은 건물 사진뿐 아니라 1960년대 한은 여자 농구단 기념패, 낡은 행가 악보 등도 전시됐습니다. 입행한지 얼마 안된 행원들은 신기한 듯, 20~30년 가량 한은에 몸담고 있는 임원들은 옛 생각이 나는 듯 사진과 각종 전시물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이번 사진전은 한은에 남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한은은 다음달부터 태평로 삼성 본관으로 이사합니다. 남대문로 본관과 별관을 리모델링하면서 3년간 임시 거처에서 지내게 된 겁니다. 심한 노후화로 인해 취약해진 안정성과 보안성을 위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한시적 조치지만 ‘남대문로 터줏대감’ 한은의 이사는 창립 후 처음입니다. 한은이 자리를 옮기는 건 한국전쟁 때를 빼면 사실상 처음이거든요.
이와 함께 한은은 스토리텔링 공모전도 열었습니다. 약 한달 간 한은 관련 미담과 체험담을 다룬 글을 제출받았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196명이 응모했고, 외부 심사위원의 평가를 거쳐 6편의 당선작을 선정했습니다. 최우수상엔 아버지 병원비로 쓰기 위해 창고에 모아둔 돈을 쥐가 파먹어 안타까워하다가 한은에서 전액 새 돈으로 교환한 사연을 제출한 회사원 홍진씨가 뽑혔습니다.
한은이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연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일반 국민과 소통의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로 기획됐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행사 진행도 여느 기관과 조금 달랐습니다. 대개 행사를 기념하거나 행사 시작을 알리기 위해 테이프 커팅식을 합니다. 기관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이 일렬로 서서 가위로 테이프를 자르는 장면을 흔히 봤을 겁니다.
하지만 이날 한은은 테이프 대신 여성용 스카프를 활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카프끼리 매듭을 묶어 길게 한 줄로 만들어 테이프 대신 활용한 겁니다. 그리고선 각자 앞에 있는 스카프의 매듭을 푸는 식으로 행사 시작을 기념했습니다. 행사 후 각 스카프는 기념으로 참석자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고요.
알고 보니 이같은 행사 기획에는 소통을 강조하는 이주열 총재의 의지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묶인 매듭을 푸는 것처럼 한은이 국민과 시장 가까이서 소통하면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한은은 올해부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개최 횟수가 줄면서 외부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통화위원회 간담회 횟수를 늘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미국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통화정책 향방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한은의 행보에도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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