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제로 시대' 구상은 …
파견·용역 근로자 정규직 전환이 초점
실태 전면조사…하반기 중 로드맵 제시
"공공부문 챙기려다 전체 노동시장 흔들 수도"
[ 심은지 / 백승현 기자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로 인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의 해묵은 과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가 도입되고 2007년 기간제법이 제정되면서 20년간 심화됐다. 비정규직 해법은 이 기간 모든 정부의 공통 공약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첫 외부 행보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 ‘비정규직 제로(zero)’ 선언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12일 취임 후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15년 전 노 전 대통령의 행보를 연상시킨다.
통상 비정규직은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근로자를 통칭한다. 협력업체 소속의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실제 일하는 사업장의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면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첫 행보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은 ‘함의’에 주목하고 있다. 인천공항은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근로자가 대부분인 곳이다. 역대 정부가 보여온 기간제 근로자 중심의 비정규직 대책이 간접고용 중심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상시근로자를 직접 고용” 주문
그동안 비정규직 대책의 주요 타깃은 기간제 직원들이었다. ‘업무의 연속성이 있고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 향후 2년 이상 근무할 근로자’를 상시근로자로 규정하고, 주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복리후생 등 처우 개선과 차별 금지에 초점을 맞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 직원 185만여 명 중 31만 명(기간제 19만 명, 파견·용역 등 12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1호 대책으로 ‘간접고용’에 방점을 찍었다. 기간제는 물론이고 파견·용역이라 하더라도 출산, 휴직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상시근로자는 모두 다 직접 고용하라는 주문이다.
문 대통령은 노·사·정 고통 분담 얘기도 꺼냈다.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다 받아내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해나가자”고도 했다.
◆공공 비정규직 실태조사
문 대통령은 이날 각 부처에 즉각적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지시했다. 늦어도 하반기까지 비정규직을 줄일 로드맵을 작성하라는 주문도 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도 하반기에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상시적 업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문 대통령 공약은 새 정부 내각 구성과 함께 빠르게 완료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상시근로자는 법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지침만 바꾸면 상시근로자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걸림돌은 있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사용사유제한제도’다. ‘비정규직을 쓰려면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등 법 개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미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있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갈 길 먼 비정규직 해법
새 정부가 시범 케이스로 선택한 만큼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은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공사는 소속 비정규직 1만 명을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예산 지원도 약속하면서 다른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의 확산도 시간 문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민간부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849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1947만 명)의 43.6%에 달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성과에 매몰돼 자칫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공공부문은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30인 이하의 열악한 중소기업 근로자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부분적으로는 정의롭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심은지/백승현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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