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000개 일자리 창출
심부름센터·흥신소 양성화…실종가족찾기 등 분야 다양
"공권력이 해결 못해 생기는 억울한 피해사례 줄어들 듯"
공인탐정은 경찰청이 관리
'공인탐정법' 이미 국회 발의…경찰, 시험과목 연구용역 발주
사생활침해 우려 목소리도
[ 성수영 / 이현진 기자 ] [ 성수영/이현진 기자 ]
지난해 10월 오후 8시께 경기도의 한 도로. 자가용을 운전 중이던 A씨(55)는 사이드미러로 우측 차선을 살폈다.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한 A씨는 안심하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전조등도 켜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려온 차량이 뒤를 들이받은 것. 경찰서로 간 A씨는 더욱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차선을 변경할 때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A씨에게 80% 과실이 있다는 판정이 나와서다. 화가 난 A씨는 한 민간조사(탐정) 업체에 사건을 의뢰했다. 이 업체는 블랙박스 영상 등을 분석해 뒤차가 사고 직전 시속 60㎞ 제한속도를 훨씬 넘는 86.5㎞로 달렸다는 증거를 추가적으로 밝혀냈고 이에 따라 A씨의 과실 비율은 10%로 낮아졌다. A씨는 “하마터면 차 수리비, 치료비, 보상금까지 2800만원을 억울하게 물어낼 뻔했다”며 “탐정 의뢰비로 700만원을 썼지만 만족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설탐정 시장이 열리고 있다. 공인탐정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미 작년 9월 국회에 제출된 관련법 통과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법 통과 이후 연 1조3000억원에 달하는 시장이 새롭게 창출되고 이에 따른 고용 효과만 1만5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판 셜록 홈스’ 기대
현재 국내엔 사설 탐정의 근거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채권추심업을 허가받은 신용정보회사 외에는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상거래관계 외 사생활 등을 조사해서는 안 되고 정보원·탐정 등 명칭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이에 따라 민간인이 특정인을 미행하거나 당사자 동의가 없는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을 하는 등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실종 가족을 찾거나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조사하는 등 수요는 항상 존재했다. 심부름센터나 흥신소라고 불리는 곳에서 이 같은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근거 법률이 없고 이들 업체를 관리하는 기관이 없는 탓에 늘 사생활 침해 및 불법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공인탐정제가 도입되면 실종 가족 찾기, 소송 자료 수집 대행, 보험사기 판정,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설탐정이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9월 대표 발의한 공인탐정법에 따르면 공인탐정은 미아 가출인 실종자 불법행위자 도난물품 등에 대한 추적과 소재 확인 작업을 도울 수 있다. 의뢰인의 권리보호 및 피해와 관련한 사실 조사를 맡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들 탐정은 경찰청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공인탐정이 되려면 우선 경찰청이 주관하는 시험을 거쳐 소정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자격 시험은 1~2차 시험으로 나뉜다.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직원 중 수사·정보 등 유사업무 종사 경력이 10년 이상인 자는 1차 시험이 면제된다. 경찰 관계자는 “시험 과목에 대해 연구 용역을 받았다”며 “1차 시험은 기본 소양과 관련된 민간조사기초법, 개인정보보호론 등으로 구성하고 2차는 증거조사론 등 실무과목으로 편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 1조3000억원 시장…1만5000명 고용 예상
민간조사업을 법제화하자는 목소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민간조사가 법제화되지 않은 곳은 한국뿐”이라며 “(공인탐정이 활성화되면) 법원 검찰 경찰 등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사례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자리 창출 등 관점에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장현석 경기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민간조사업을 도입하면 연 1조3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열리고 1만5000여 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2014년 3월 발표한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에서 사립탐정(민간조사원)을 44개 미래 유망 직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공인탐정법이 통과되면 선진국에서의 운영 노하우를 무기로 국내 시장에 들어온 해외 업체에 맞서 토종 업체가 약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서울 강남에서 운영 중인 한 민간조사업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음성적이고 영세화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업체들도 합법적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생활 침해 우려 해소가 관건
반면 변호사 업계에서는 민간조사업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간조사가 활성화되면 사생활과 개인정보 침해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한 한국에서 민간조사업 도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우종 회장은 이에 대해 “국가 수사기관이 국민의 모든 조사 수요를 해결해주기란 불가능하다”며 “추후 시행령에서 공인탐정의 활동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면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공인탐정 도입으로 사생활 침해가 도리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사실상 방치돼 있는 불법 흥신소 등을 통한 사생활 침해가 오히려 더 큰 문제”라며 “국가에서 공인탐정을 관리 감독하면 설사 사생활 침해 등 불법 행위가 있더라도 사후에 적발해낼 수 있다”고 했다.
성수영/이현진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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