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신호등·공장·담배 없는 나라
이런 곳에 록밴드 라이브 바가 있다니…
벼랑끝 아찔한 탁상사원…이 은둔지는 환상 아닌 현실
길 잃은 강아지도 행복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 최병일 기자 ]
히말라야 산맥에 숨어 있는 은둔의 왕국. 세계에서 행복지수 높은 국가를 꼽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나라. 스스로 왕권을 내려놓고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왕이 사는 곳. 이름조차 낯설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해지는 부탄의 정식 명칭은 부탄왕국(Kingdom of Bhutan)이다.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받는다. 자연을 중시해 도축과 낚시와 벌목은 불법이다. 공장과 고속도로와 신호등은 아예 없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오면 환경이 오염된다고 자유배낭여행을 금지했다. 환경부담금으로 쓰이는 체류비를 내고 허가받은 여행사를 통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부탄 여행을 꿈꾼다. 특히 올해는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 관광객에게 혜택이 주어져 관심이 더 뜨겁다. 드디어 버킷리스트에 있는 이 낯선 곳으로 떠날 때가 된 걸까?
주소도 신호등도 없는 수도 팀푸
태국 방콕에서 부탄행 항공기로 갈아탄 지 약 세 시간 반. “히말라야다!” 하고 외치는 탄성에 잠에서 깼다. 창밖으로 만년설이 쌓인 산맥이 펼쳐진다. 중국 티베트와 남쪽의 인도 사이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숨은 나라 부탄이 가까워온다. 나라의 관문인 파로(Paro) 공항은 험준한 산자락을 아슬아슬 파고들며 착륙해야 하는 해발고도 2235m에 자리한다. 비행기가 서서히 선회하자 베일에 싸여 있던 부탄 왕국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야트막한 전통 가옥들, 언덕 위 사원들, 계단식 논 곳곳에 오색 깃발이 나부낀다. “룽다(Lungda)라고 부르는 오방색 깃발은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을 뜻합니다. 경전의 가르침이 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죠.” 윌리엄 리 부탄문화원장이 설명한다. 부탄은 한반도 5분의 1 크기에 3000여개의 사원이 있고, 인구 약 70만명 중 2만여명이 승려인 나라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국교는 불교다.
치링 펨 부탄관광청 과장이 전통복장 차림의 환한 미소로 한국에서 온 일행을 맞았다. 함께 버스에 올라 향한 곳은 수도 팀푸다. 파로에서 약 50㎞ 떨어진 팀푸는 부탄 최대 도시지만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적고 조용한 수도다. 서울의 종로나 명동 같은 최대 번화가엔 따로 이름도 없다. 그냥 메인 스트리트라고 부른다. 나라 전체에 신호등이 없어서 팀푸 중심가에서 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이 볼거리로 꼽힌다. “부탄은 헌법에 삼림 면적이 국토의 60% 이하로 떨어지면 안 된다고 명시돼 있고 현재 67%가 삼림입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공장과 터널을 만들지도 않아요. 도축과 낚시를 금지해 고기는 모두 수입하죠. 지구상 유일한 금연 국가로 담배 제조와 판매도 금지돼 있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대개 전통 옷을 입었다. 표정이 모두 구김 없이 밝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붓다포인트
시내 중심 랜드마크는 3대 왕을 기리며 세운 기념비인 내셔널 메모리얼 초르텐(National Memorial Chorten)이다. 팀푸 사람들은 출근길에 이곳에 들러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탑돌이를 한다. 주말에도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빌거나 산책을 즐긴다. 히말라야 다른 국가에서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도 보인다. 불탑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올리는 그들의 눈에는 간절한 믿음이 배어 있다. 시내에서 약 5㎞ 떨어진 산자락에는 하늘과 맞닿은 세계 최대 크기 좌불상도 있다. 현 국왕 취임을 기념해 세워진 이 불상의 높이는 51.5m에 이른다. 금으로 채색한 불상의 위용이 대단하다. 태국 대만 미얀마 등 주변국에서 보시해 금을 입혔다고 한다.
붓다포인트(Budda Point)라 불리는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팀푸 시내 전경도 볼거리다. 근사한 전망 덕분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꼽힌다고 치링은 덧붙였다. 저녁 무렵 숙소로 향하는 길에 부탄 젊은이들의 문화를 좀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라이브 바에 들렀다. 부탄에도 세계적인 브랜드 호텔이 있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있고, 클럽도 있다. 모조파크(Mojo Park)란 이름의 라이브 바에 들어서니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전자 기타와 드럼을 멋지게 연주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과 영국 록밴드의 노래가 나오자 관객 모두 신나서 열창한다. 부탄 맥주 드룩 라거(Druk Lager) 한 잔이 그 열기를 더없이 시원하게 식혀준다.
수면에 뜬 연꽃같은 푸나카 종
팀푸에서 좀 더 동쪽에 자리한 푸나카(Punakha)로 향했다.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터널이 없는 나라이다 보니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끝없이 타야 한다. 산자락 아래로 계단처럼 이어지는 다랑논을 볼 수 있었고, 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과 미소를 나눌 수 있었다. 지역 경계 지점의 검문소도 거치고, 세계 최고 고지대에 있는 휴게소도 지났다. 좁고 가파른 산길에서 차 바퀴가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도 몇 번이나 겪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푸나카의 상징인 푸나카 종이다. 부탄에는 곳곳에 ‘종(Dzong)’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요새이자 사원을 뜻한다. 각 지역 행정과 사법 청사 기능도 담당하고 있는 부탄 고유의 건축물이다. 보통 지역 이름을 따서 부르는데 1637년에 세워진 푸나카 종을 단연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꼽는다. 아버지 강을 뜻하는 ‘포추’와 어머니 강을 뜻하는 ‘모추’가 만나는 삼각주에 자리한 푸나카 종은 물에 떠 있는 듯 보인다. 수면에 핀 연꽃처럼 고아하다. “부탄 사람들은 아름다운 물의 여신이 이 종을 지킨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 부탄 건국자인 샵둥(Shabdrung)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어 더 신성하게 여깁니다.”
부탄의 국민 스포츠 활쏘기
사원 옆 숲에서는 전국 활쏘기 대회가 한창이다. 부탄 말로 ‘다체(Datse)’라고 부르는 이 활쏘기는 부탄의 국민 스포츠다. 표적과의 거리는 무려 140~150m. 올림픽 양궁 종목 50m의 세 배에 이른다. 형식은 양궁보다는 국궁과 닮았다. 이날은 마침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330개 팀이 128강부터 시작해 결승을 치르는 현장. 전통 의상을 입은 선수들이 마주보고 서로의 과녁에 차례로 활을 쏜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에 있는 과녁을 기가 막히게 맞히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점수가 잘 나오면 같은 편 선수들이 환호를 보내고, 못 나오면 상대편 선수들이 놀리는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추며 상대 팀을 놀려대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이들에겐 공동의 놀이가 있고 주고받는 웃음이 있다. 그러고 보면 마주치는 아이들은 모두 자연에서 뛰어놀아 새카맣게 탄 얼굴로 웃곤 했다. 부탄 거리엔 개도 유난히 많았다.
“윤회설을 믿는 부탄 사람들은 개가 인간이 되기 바로 전 단계의 생명이라고 여겨요. 인간이 죽어서 저승에 갈 때 곁에서 인도하는 것도 개라고 믿죠. 그래서 누구나 개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잘 보살펴 줍니다.” 저 많은 개를 누가 보살펴 주나 싶어 물 한 병 사면서 상인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부탄에선 어른도 아이도 개들도 행복한 듯하다. 부탄은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GNH)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지속 가능한 발전, 공동체 문화,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좋은 정부, 깨끗하고 쉴 수 있는 환경 등을 기준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하고 연구한다.
해발 3140m 아찔한 탁상사원
어느새 부탄 여행의 막바지. 버스는 처음 출발했던 파로로 다시 향한다. 부탄 여행의 클라이맥스인 탁상(Taktsang) 사원이 파로에 있기 때문이다. 아찔한 절벽에 서 있는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 탁상은 부탄 말로 ‘호랑이의 둥지’를 뜻한다. 히말라야 지역 최고 고승으로 추앙받는 파드마삼바바가 747년에 암호랑이 등에 올라타 이곳으로 왔다는 전설이 있다.
해발 3140m 높이의 절벽에 걸려 있는 사원까지 가는 길은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2600m 지점 주차장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돈을 내고 조랑말을 빌려 타고 중간 지점까지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 걷는 것을 택한다. 꼭대기에 있는 탁상 사원까지는 약 7~8㎞. 멀지 않은 거리지만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여서 금방 숨이 차오른다. 고도가 점점 올라가고 한낮이 돼 갈수록 태양도 뜨거워진다. 어렵게 도착한 탁상 사원은 가파른 벼랑 끝에 아찔하게 걸려 있다. 부탄이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릴라’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샹그릴라는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히말라야에 숨겨진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왕국이다. 소설 속엔 이런 문장이 있다. ‘아름다운 색채를 가진 누각들이 산 중턱에 붙어 있는데 벼랑에 꽂힌 꽃잎처럼 수려한 모습이다.’ 히말라야 인근 여러 나라가 샹그릴라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여기가 바로 샹그릴라라는 걸 믿고 싶다. 이 은둔지가 이제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면서.
여행정보
부탄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방콕, 델리, 카트만두 등을 경유한다. 개별 여행은 불가능하다. 하루 최소 200달러의 체류비를 내고 허가받은 여행사 투어에 참여하면 된다. 비자는 해당 여행사를 통해 발급받을 수 있다. 체류비에는 숙박, 교통, 가이드, 식사 등이 포함된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6~8월에 한국 관광객 체류비를 65달러로 낮춰준다. 호텔, 식비, 가이드, 교통은 별도지만 체류비와 합하면 1일 30달러 정도 절약된다. 그밖에 항공료는 30% 할인, 숙박은 호텔에 따라 최대 50% 깎아준다. 화폐는 눌트럼이며 전압은 인도와 동일한 230V다. 이 밖의 정보는 부탄관광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세한 여행 문의는 서울에 있는 부탄문화원으로 하면 된다.
특별관광정책이 적용되는 6~8월은 부탄의 우기에 해당한다. 외부 활동이나 사진 촬영이 중요한 여행자라면 봄가을에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사원이나 박물관 위주로 관광할 계획이라면 여름 할인 시즌을 이용해 20~30% 싸게 여행할 수 있다. 특별관광기간을 타깃으로 수많은 한국여행사와 부탄여행사가 상품을 팔고 있다. 개중에는 여행객 모집을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 숙식이 부실할 가능성이 높으니 유의하자. 가장 일반적인 7박8일 방콕 경유 상품의 경우 250만원 미만이라면 주의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게 좋다.
팀푸=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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