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취임 1호 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내세웠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만들어 매일 챙기겠다고도 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일자리 100일 플랜’을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는 등 일자리 불안이 국가 현안인 만큼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선 건 적절하다. 하지만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철밥통 일자리만 늘어날 수도
첫째, 문 대통령이 늘리겠다는 건 공공 일자리다. 공무원 17만4000명을 포함해 공공 부문에서 81만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게 공약이다. 이를 위해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작업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공공 일자리는 한 번 늘리면 좀체 줄이기 어렵다. 재원 부담도 크다. 공공 부문 정규직 평균 인건비는 연 6800만원으로, 1인당 국민소득(3100만원)의 두 배 이상이다. 문 대통령은 마중물 역할에 그친다지만 자칫 철밥통만 잔뜩 늘리고 국민 부담만 키우는 결과로 끝날 우려가 크다.
둘째, 일자리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경제 체질을 개선해 민간이 스스로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일자리는 늘어난다. 경기 지표 가운데서도 고용은 경제가 좋아지고 난 다음에야 개선이 눈에 띄는 후행 지표다. 이런 점에서 ‘일자리 100일 플랜’이란 구호는 적절치 않다. 속도전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셋째, 민간 ‘구축효과’가 우려된다. 고시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에는 벌써부터 ‘공시족(族)’이 몰린다고 한다. 기업에 들어가 도전정신을 익히고, 열정으로 창업을 꿈꿔야 할 젊은이를 너도나도 노량진으로 몰리게 하는 정책은 민간 일자리를 내쫓는 결과를 낳는다. 공공 일자리 공약에 중소기업인들이 한숨을 쉬는 것도 이런 이유다.
노동개혁 밀어붙일 용기 필요
대통령이 매일 현황판을 챙기며 다그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공무원들은 눈치보며 ‘숫자 만들기’에 골몰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그랬다. ‘고용률 70%’를 목표로 제시하며 부처별 일자리 창출 방안을 짜오라고 하자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 각 부처가 만들겠다고 한 일자리 숫자를 합쳐보니 고용률 100%가 넘는 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시장 스스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에서 정부 역할은 끝나야 한다. 기업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으면 투자와 고용을 꺼린다.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려면 지난 정부 때 중단된 노동 개혁부터 제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 노동 개혁에 반대한 기득권 노조에도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특정 정파의 대표가 아니다. 때로는 여론의 욕을 먹더라도 혼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고독한 자리다. 당장은 지지세력에 인기가 없더라도 설득하고 밀어붙인 용기 있는 대통령이 후대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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