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대상 24곳 중 22곳
게임·ICT·바이오 등 대부분 신성장 기업
지분 매입 비용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의 2~3배 써야하는 곳도
문재인 대통령 의도와 달리 중소·중견기업 경영 부담
[ 황정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재벌개혁 공약의 하나로 ‘지주회사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통용되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주사 규제 강화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의 재벌개혁 의도와 달리 주로 중소·중견 지주사(공정거래법상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이 아닌 기업)의 경영 부담만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책 의도를 달성할 가능성은 적고 기업 경영활동만 위축시킬 것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지분율 ‘30% 이상’으로 높여야
문 대통령이 약속한 지주회사 규제 강화의 핵심은 △지주회사의 상장 자회사 최소 지분율(현행 20%) 상향 △지주사의 부채비율 기준(현행 200% 이하) 강화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정거래법을 고쳐 상장 자회사 최소 지분율 요건을 30%로 지금보다 10%포인트 올릴 계획이다. 지주회사가 다수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것을 어렵게 해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 승계나 지배력 남용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부채비율 기준 강화는 외부 자금 조달을 통한 사업 확장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강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지주회사 규제 강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주사는 주로 중소·중견 지주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주회사 현황 자료를 기초로 분석한 결과 ‘상장 자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지주사는 SK 등 24곳이다. 작년 말 기준 지분율 30% 미만 상장 자회사를 두고 있어 주식 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할 업체들이다.
◆적자기업이 250억원 써야 할 판
24개 지주사는 총 3조2857억원의 비용(지난 11일 주가 기준)을 써야 한다. 상장 자회사 27곳(지분율 30% 미만)의 주식을 사 지분율을 적게는 0.09%포인트, 많게는 10.0%포인트까지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분율 요건 미충족 땐 공정위 조사를 받고 과징금 부과 등 제재를 받는다.
주로 중소·중견 지주사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24곳 중 91.6%인 22곳이 중소·중견 지주사다. 게임,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 분야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지주사가 대부분이다. 셀트리온홀딩스 네오위즈홀딩스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코스맥스비티아이 한국콜마홀딩스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지주사는 SK, 한진칼밖에 없다.
중소·중견 지주사의 비용 부담도 크다. 3조2857억원의 71.3%인 2조3429억원은 중소·중견 지주사 몫이다. 예컨대 골프존뉴딘은 자회사 골프존 주식 9.7%(약 312억원)를 사야 한다. 스마일게이트홀딩스도 자회사 선데이토즈 주식 9.1%(약 191억원)를 시장에서 매수해야 한다.
주식 매수 비용으로 작년 영업이익의 2~3배를 써야 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 웅진은 작년 적자를 냈지만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지분율 상향에 약 250억원이 필요하다. 이수 셀트리온홀딩스 슈프리마에이치큐 코스맥스비티아이 종근당홀딩스 한국콜마홀딩스 등은 작년 영업이익보다 큰 돈을 규제 회피에 써야 할 처지다.
문 대통령이 동시에 공약한 ‘지주회사 부채비율 요건 강화’도 의도와 무관하게 중소·중견 지주사의 경영 부담만 키운다. 현행 200% 미만인 부채비율을 150% 미만으로 강화하면 중소·중견 지주사 8곳, 100% 미만으로 할 땐 추가로 10곳(중소·중견 9곳, 대기업 1곳)이 규제 영향권에 들어간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문 대통령의 재벌정책은 기업 고유의 경영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락가락’ 지주사 정책 비판 커져
‘정책 일관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지주사 제도는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로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기업에 도입을 장려했다. 복잡한 순환출자로 얽혀 있는 재벌의 소유 구조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지주사 규제 강화’를 통해 지주사 전환을 어렵게 하자 재계에선 “너무 급하게 정책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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