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한국·영국 두나라의 아주 다른 성소수자 인식

입력 2017-05-15 18:32  

의회에까지 진출하는 영국의 성소수자
한국에선 보호 못 받는 불편한 존재일 뿐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



영국에서 생활하면 아무래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다 보니 소수의 인권에 신경 쓴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대부분 구인광고가 특정 인종, 성별, 장애 등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표기한다. 지원서 작성 때도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에도 타국 출신 학생에 대한 차별을 우려하고 예방하려는 학교의 노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군 수사당국이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해 기소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의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허탈함이었다. 소수 인권과 관련해 빠질 수 없는 것이 성소수자, 즉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의 인권이다. 대선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큰 이슈가 됐다. 영국은 유럽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이 앞서 있는 만큼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의 성소수자 관련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의 약 1.7%가 본인을 동성애 혹은 양성애자로 구분한다. 남성이 2.0%, 여성이 1.5%로 남성의 동성애 혹은 양성애 비율이 높다. 나이별로 보면 젊은 세대일수록 동성애 및 양성애 비율이 높다. 65세 이상은 그 비율이 0.5%를 약간 웃돌지만 16~24세 그룹의 비율은 3.5%에 가깝다. 이렇듯 성소수자 규모가 적지 않다 보니 그들을 바라보는 대부분 사람의 인식은 매우 자유로운 편이며 본인들도 대개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이뤄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성애자 인권 및 차별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며, 21세기 들어서 비로소 그들의 인권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됐다. 2000년 성소수자의 군 복무 금지가 폐지됐으며, 2010년 성 정체성에 기초한 군대 내 차별이 금지됐다. 2005년 성전환자는 그들의 법적 성별을 바꾸는 게 가능해졌으며, 201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됐다(북아일랜드에서는 파트너십 관계만 인정).

대다수 영국인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고 76%는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용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5년 선거에서는 27명의 성소수자가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영국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차별 대상이 아니며 국가적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성소수자에 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다른 통계치를 종합해 대략 0.3%의 남성이 동성애자일 것으로 추측되는 정도다. 그들의 성적 정체성이 국가 혹은 군대에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그것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할 정도로 큰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성애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확고하다”면서도 “군대 내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굳이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성소수자는 이미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불편한 시선으로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그런 고통을 국가가 보듬어주고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억압하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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