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형 기자 ] 세계적 석학 새뮤얼 보울스 미국 애머스트대 명예교수는 《협력하는 종》(한국경제신문 펴냄)에서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건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보울스 교수는 “혈연 관계가 아닌 개체 사이에서 협력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인간이란 종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라며 인간을 ‘협력하는 종(種)’으로 규정했다.
김은환 삼성경제연구소 자문역은 진화사회학의 시각으로 기업의 탄생과 진화, 미래를 바라본 저서 《기업 진화의 비밀》에서 보울스의 관점을 따른다. 인간은 협력의 규모와 정교함을 발전시키며 맹수들의 사냥감 신세에서 차츰 벗어나 능력 있는 사냥꾼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군대와 관료제를 거느린 조직 설계자, 오대양을 누비는 무역상으로 화려한 변신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협력과 혁신을 키워드로 삼아 인류 역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등장해 어떤 역할을 맡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기업의 역사를 인류 문명사와 접목해 재구성한 ‘빅 히스토리’라고 할 만하다.
저자에 따르면 협력과 혁신은 미묘한 긴장 관계다. 협력은 안정적인 틀을 요구하고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에서 상당한 정도의 예측 가능성을 전제한다. 돌출적 행동이나 즉흥적 대응은 억제하는 성질을 지닌다.
반면 혁신은 이런 예측 가능성을 흔들어 놓는다. 혼란을 새로운 질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수평적 협력보다 단호하고 일방적인 리더십을 요구하곤 한다. 한편으로 기존의 교착 상태나 갈등을 풀어주고 협력 관계를 맺기 위해선 기존의 관계를 혁신해야 한다. 동시에 혁신적 아이디어를 현실적인 질서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열성적인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서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혁신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일종의 묘기라고 할 수 있는 난제였다. 근대 이후 이런 난제를 푸는 묘수는 바로 ‘기업’이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책의 핵심 주제라고 할 만한 주장을 내놓는다. 기업은 근대에 이르러 협력의 기반 위에서 혁신을 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고안됐다는 것이다. 석기시대 이래 인류는 언제나 경제생활을 영위해왔고 느리게나마 혁신을 지속해왔다. 불, 도구, 농경 등 원시 인류가 이룩한 혁신은 어떤 의미에서 근대 산업혁명보다 더 근원적이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다만 너무나 느렸다. 정지화면 같았던 인류사회의 성장은 근대 이후 극적으로 빨라졌다. 가속의 시점은 기업이 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한 시점과 겹친다. 기업은 수많은 개별 시장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시장에 의해 조직되는 경제, 즉 ‘시장경제’ 자체를 건설하는 건설자 역할을 수행했다. 시장이라는 무대에서 기업이 분산화된 지속적 혁신을 담당하는 오늘날의 경영자 자본주의가 현재 세계 경제의 모습이 됐다.
저자는 “기업은 ‘협력하는 종’인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혁신의 도구”라는 주장을 논리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펼친다. 현대 기업들이 모듈화·네트워크화·시장화의 흐름을 타고 변모하는 모습도 상세하게 짚는다. ‘기업이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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