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사람들 무지를 깨우쳐 주는 것이 사명"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 광장에서 아테네 청년들을 가르치며 대화한 점에서는 소피스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소피스트가 젊은이들에게 논쟁에서 승리하고 세속적으로 출세하는 방법을 가르친 반면,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대화의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했다.
소피스트들이 유행하던 시절
게다가 소피스트가 비싼 수업료를 받은 반면, 그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그 자신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없고 따라서 돈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삶을 산 것은 그의 진리 탐구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의 출발은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상대주의 입장을 취한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의문을 제기했다. “돼지나 개가 아니고 왜 하필 인간이 만물의 척도인가?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면 우둔한 자들과 현자인 당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설령 그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인 당신의 척도 아닌가?” 사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더라도 정작 그 인간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그 말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논쟁에서 승리하고 출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객관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행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질문으로 진리 찾아가는 ‘산파술’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던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진리를 알고 자신을 아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지하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하고 있는 소피스트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는 왜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명은 산파의 역할과 비슷하였다.
산파를 어머니로 둔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산파로서 임신부가 아이 낳는 것을 도와주는 것처럼, 자신은 아테네 청년들이 참된 진리를 낳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자 하였다. 산파와 같이 소크라테스 자신은 비록 진리는 알지 못할지라도 대화의 상대방이 진리를 깨닫도록 도울 뿐이라는 것이다. 이 산파술의 핵심은 변증법이었다.
변증법은 대화를 통해 질문과 대답을 오가는 과정에서 참된 지식을 찾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철학자였다.
이 변증법을 활용하여 그는 우선 상대방의 논리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모순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상대방이 스스로 무지를 시인하도록 하였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참다운 지식에 이르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피상적인 지식에 자만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폭로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적이 많았던 소크라테스와 독배
이제 변증법을 사용한 소크라테스 대화의 사례를 살펴보자.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아버지를 고발하려는 에우티프론에게 경건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경건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경건이란 신(神)이 좋아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신들도 서로 다투기가 일쑤인데 도대체 어느 신이 좋아하는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질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이라고 하는 이와 같은 대화 방법을 통하여 대화 상대방이 피상적인 지식을 넘어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우려 하였다. 하지만 상대적인 지식이나 세속적인 출세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가르침은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아테네 사회에서 유력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로 인하여 무지가 폭로되고 망신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크라테스에게는 많은 적들이 생겼고 이들의 고소로 그는 재판에 넘겨져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기에게 바른 말 해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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