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를 20여일 앞둔 4월18일 각 정당에 거액의 선거보조금이 지급됐다. 국고보조금은 이번에만 421억원에 달했다. 전액 국민 혈세에서 나간 것으로, 국회의원 숫자에 비례해 정당별 지원 금액이 산정됐다. 지급일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119석) 123억5737만원, 자유한국당(93석) 119억9433만원, 국민의당(39석) 86억6856만원, 바른정당(33석) 63억4309만원 등이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지적하는 국민 중에는 퇴행적인 정당판에 혈세를 왜 주느냐는 지적이 많다. 정당에 국고보조금은 정당한가.
○ 찬성
“선진국에서 정당 발전은 필수, 투명 정치로 가는 비용이다”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입법부와 정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를 받아들이려면 민주적 공당(公黨)으로서의 정당이 잘 자리잡는 게 필수다.
대의 민주주의의 성패를 좌우하는 게 정당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치권력 획득이 정당의 존재 이유라지만 현실적으로 유권자들과 입법부(국회)를 매개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실제적으로 준(準)공조직인 것이다.
문제는 정당에 운영 자금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명분이 좋은 일이라도 어느 정도 경제적 보상이나 지원 없이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되기 어렵다.
선거 때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정당의 운영자금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는 정당의 수입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기부금도 정당으로는 거의 가지 않는다.
수많은 정당들이 선거 때면 불법 선거자금을 받아 사법적 단죄까지 받았으면서도 이런 범죄적 행위가 좀체 근절되지 않는 것도 그런 현실적인 한계 때문이다.
결국 나랏돈으로 정당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정당은 더욱 깨끗한 정치로 나아갈 수 있고, 국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된다. 불법 선거비용, 불법 정치자금으로 인한 ‘부패의 비용’을 국고로 예방할수 있는 것이다. 투명사회, 선진사회로 가는 비용이라고 보면 대선 같은 큰 선거에서 421억4249만원 지출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 반대
“국민 혈세 받을 자격 없고 국고지원 더 절실한 곳 많다”
한국 정치가 국고보조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한국 정치는 경제와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할 정도로 퇴행적이다.
수십년 적폐가 이어지면서 좀체 변하지 않는 곳이 바로 여의도 정치다. 대대적인 외부 수술이 다급한 곳에 선거 때마다 국고 지급이 웬 말인가. 우리 사회에는 정당이 아니라도 돈 쓰일 곳이 너무나 많다. 한 번 선거에 지출된 421억원으로도 당장 효과를 볼 영역이 너무나 많다.
정당으로 가는 국고지원 보조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검은돈을 차단하고 깨끗한 선거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 검증된 바도 없다. 이 보조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은 채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일도 허다하다.
어떤 경우는 보조금만 받아 쓰고 막상 선거에서 후보가 사퇴하면서 막말로 ‘먹튀’ 논란까지 빚어지곤 했다. 18대 대선 때 27억원의 선거보조금을 받고 선거 3일전에 사퇴한 뒤, 2014년 지방선거 때도 비슷한 행보로 수십억원의 혈세를 챙긴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도사퇴한 어느 후보도 보조금을 반납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고 강탈에 가깝다. 국고 보조금 중 이렇게 관리 감독이 허술한 경우는 없다. 미국은 후보지명 전당대회 정도만 보조해 주고, 프랑스는 용지와 인쇄비용 벽보만 보전해 준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정당에 어떤 국고 지원도 없다.
○ 생각하기
"공명선거·투명정치 성과 없으면 전면 재검토해야"
독지가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는 곳은 주로 대학 등 교육기관, 복지시설, 병원 같은 곳이다. 정당판에 사재를 기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한국에서 정치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고, 심하게 말하면 경멸적 가치에 가깝다. 나랏돈 쓸 데가 갈수록 많아지는 판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에 막대한 보조금을 준다니 속이 편치 않은 납세자들이 적지 않다.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정치권의 다짐도 아직은 공허한 게 현실이다. 정치권 내부의 자발적인 대혁신이 앞서야 한다. 보조금의 1원까지도 정당한 곳에, 투명하게 쓰여야 한다.
정치적 지향점이 달라진 정파들이 보조금 때문에 분당도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돌아보면 ‘눈먼 돈’으로 여기는 시각이 아직도 있다.
자칫 ‘무능 정치’와 정치기득권을 옹호해 주는 정당보조금 제도는 재검토될 만도 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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