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공석에 국회 요청도 없는데"…감사원, 4대강 감사 '난감'

입력 2017-05-23 17:37  

'4대강 감사' 딜레마

문재인 대통령 유례없는 공개 지시에 '감사청구' 절차 논란

감사청구 주체 없어
감사 착수하는 요건 갖추려면 총리·국회 등 요청 있어야 가능
공익감사청구는 대상서 제외

'눈치감사' 끝내겠다더니…대통령 정책감사 지시만으로
감사원이 직권으로 나선다면 표적감사로 중립성 훼손 우려



[ 정인설 기자 ]
현직 대통령의 유례없는 감사 지시로 감사원이 고민에 빠졌다. 4대강 사업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정책 감사를 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 지시가 떨어졌지만 관련 법·규정 때문에 곧바로 감사에 착수하기 어려워서다.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는 국무총리는 공석이고 국회도 공전 중이다. 검찰의 인지 수사처럼 감사원이 자체 감사에 나선다면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게다가 문 대통령도 “눈치 보지 않는 감사원을 만들겠다”며 감사원의 독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벌써부터 야권에선 ‘정치 검찰’ 대신 ‘눈치 감사원’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사 요건 맞추려면

감사원 관계자는 23일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만큼 감사 착수 여부를 포함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직 대통령이 감사 필요성을 제기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감사원이 곧바로 4대강 사업 감사에 착수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원법과 감사원 훈령에서 무분별한 감사권 남용을 막기 위해 감사 착수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무총리가 요구하면 감사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경우 감사원은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처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후보자가 총리로서 “4대강 사업을 감사하라”고 감사 요구권을 행사하더라도 감사원이 꼭 따를 필요는 없다. 감사 착수 여부는 감사원이 최종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총리 요구와 달리 국회의 감사 요구권은 감사원이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단 이때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안건에 한해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4대강 사업 감사에 찬성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반대하고 있다. 4대강 사업 감사 안건이 일사천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청와대 입장에서 가장 쉬운 길은 국토교통부를 통하는 방법이다. 감사원법상 관련 부처 장관은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할 수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총리실이나 국토부 등으로부터 공식 문서를 접수하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만 19세 이상인 국민이 300명 이상 동의서명한 경우도 공익감사청구 요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이 공익감사청구 대상에 해당하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공익감사청구의 남발을 막기 위해 이미 감사를 했거나 감사 중인 사안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이미 세 번의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물론 민주당은 “이번엔 4대강 사업의 정책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살피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의 담합과 수질, 계획 수립 과정 등을 훑어본 이전 감사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감사원 독립’ 약속하고 감사 지시

감사원은 외부의 감사 청구가 없더라도 자체 판단에 따라 감사에 나설 수 있다. 검찰이 고소·고발 사건 외에 자체 첩보로 인지 수사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원칙은 4대강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감사원은 감사 청구나 요구가 없었지만 2011년 1월(1차)과 2013년 1월(2차)에 각각 4대강 사업을 감사했다. 그러나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1차 조사에선 “문제가 없다”고 해 ‘봐주기 감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차 조사에선 “총체적 부실”로 결론 내려 ‘정치 감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감사원의 눈치 감사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권력기관 개혁의 세 번째 대상으로 감사원을 지목하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취임 10여 일 만에 스스로 이런 약속을 뒤집고 말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감사원이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는 이유로 4대강 사업을 표적 감사하면 감사원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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