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향해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며 경고장을 날렸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전날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우려를 나타내자 직접 정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당사자인 김 부회장은 입을 닫았다. 관료 출신인 박병원 경총 회장도 청와대와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에 있는 선·후배 관료들에게 잇달아 ‘항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은 많이 변했는데…”
경제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과거 10년간 노동계는 변한 게 없지만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과 투자에 힘을 쏟으며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을 위해 빠른 속도로 변해왔다”고 했다.
기업 지배구조도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는 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상법 개정 등을 거쳐 사외이사제도를 정착시켰고, 감사위원회 설치로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인정했듯이 5년 전 15개 그룹, 9만8000개에 달하던 기업들의 순환출자 고리는 현재 7개 그룹, 90개만 남아 있을 정도로 크게 개선됐다. 계열사 간 거래 역시 상장회사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이면 무조건 일감 몰아주기 대상에 포함될 정도로 규제의 문턱이 높아졌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들은 그동안 정년 연장에 동의하고 고용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왔는데 되레 반성과 개혁의 대상으로만 낙인 찍힌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남의 일 아니다”
새 정부의 경고가 이어지면서 경제계에선 경총이 사실상 ‘무장해제’됐다는 말이 나온다. 앞으로 새 정부의 노동 관련 정책에 이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달 회원사를 대상으로 ‘비정규직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란 제목의 책자를 배포할 계획이었지만, 경총 안팎에선 이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경총 관계자는 “앞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의 이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새 정부와 더 각을 세우면 경총 임원진의 거취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 회장이나 김 부회장이 총대를 메고 물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다른 경제단체와 기업들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분위기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상법 개정이나 법인세 인상,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권한 확대 등 이슈가 많은데 목소리를 제대로 내긴 어렵게 된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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