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어의식에서 ‘님’은 ‘씨’보다 높여 부르는 말이다. ‘님’과 달리 ‘임’은 사모하는 사람을 뜻한다. ‘임을 그리는 마음’ 같은 게 그 쓰임새다. 속담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게 있는데 이때도 ‘님’이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지난 3월부터 직원 간 호칭에 ‘님’을 도입해 화제가 됐다. 획일적이고 딱딱한 기업문화를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바꿔보자는 게 목적이다. 시행한 지 석 달째지만 아직은 어색해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1920년대 한자어 호칭 대신 써
우리말에서 동료 간에 부르는 말은 전통적으로 공(公)과 형(兄), 씨(氏) 같은 게 있다. 아주 점잖게 ‘이 공, 김 공’ 하면서 격식도 차리고 짐짓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친해지면 ‘형(兄)’을 붙이기도 한다. 제일 무난하면서 널리 쓰이는 말은 ‘씨(氏)’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자어라 예전부터 좀 더 친근한 말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한글학회에서 1980년대 미혼 남녀를 부를 때 ‘도령’ ‘아씨’를 쓰던 것은 그 일환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은행이나 병원 같은 데서 고객을 상대로 “OOO 님~” 하고 부르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부에서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 나름대로 이런 호칭이 자리를 잡아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찍이 부름말로 ‘님’을 제시하고 실천한 이는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일본 교토대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함께 공부하던 벗들을 ‘~님’으로 불렀다. 김 형, 이 공, 최 씨 등으로 부르던 것을 김 님, 이 님, 최 님 식으로 했다(김석득, 외솔 최현배 학문과 사상, 2000). 그는 ‘님’의 기능을 훗날 지은 <한글 바로 적기 공부>(1961)에서 상세히 밝혔다. ‘님’은 ‘공, 씨, 선비’에 해당하는 말이니, 사람이나 관직 이름 뒤에 쓰여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고 했다. 삼성전자에서 도입한 호칭어 ‘OOO 님’이 바로 이것이다. 의존명사로 쓰인 것이므로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는 것도 함께 알아두자.
‘님’은 또 하나 중요한 기능이 있는데 선생님, 사장님, 아버님, 손님, 해님 등에 붙은 ‘님’이 그것이다. 이때는 높임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쓰였다. 따라서 반드시 윗말에 붙여 쓴다. ‘해님’을 ‘햇님’으로 적지 않는다는 것도 자주 틀리는 말 중 하나이니 덤으로 알아둘 만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틀린 말
현행 문법에서 ‘님’의 쓰임새는 이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 외솔은 ‘님’의 기능에 자립명사로 쓰이는 또 한 가지를 언급했다. 이미 지적한 사람을 다시 간략하게 가리킬 때 성명을 빼고 ‘님’이란 말만으로 그를 가리키는 일도 있다고 했다. 이것은 수십 년 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통신언어 쪽에서 빛을 봤다. 채팅할 때 상대방을 ‘님!’ 하고 부르거나 “님은…”처럼 말하는 게 그것이다. 다만 현행 문법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틀린 표현이란 점을 알아둬야 한다. 며칠 전 ‘5·18 민주화운동’ 행사에서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의 표기도 같은 경우다. 이를 ‘님을 위한…’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이를 틀린 표기라 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님’과 달리 ‘임’은 사모하는 사람을 뜻한다. ‘임을 그리는 마음’ 같은 게 그 쓰임새다. 속담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게 있는데 이때도 ‘님’이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언어의식에서 ‘님’은 ‘씨’보다 높여 부르는 말이다. 상하 관계가 분명한 우리 문화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해 CJ, 아모레퍼시픽 등 일부 대기업의 ‘님’ 도입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는 우리말 진화라는 관점에서도 주목할 일이다.
마침 국립국어원에서는 직장 내 호칭 등 사회적 소통 증진을 위한 언어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외솔이 남긴 우리말 유산이 어떻게 정착할지 궁금하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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