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 큼지막한 F로고 새긴 티셔츠
라코스테·프로스펙스 스니커즈 인기
노스페이스 유행도 동일한 공식
[ 민지혜 기자 ] 작년 9월 휠라코리아는 하얀색 바탕에 F 로고가 박힌 ‘코트 디럭스’ 운동화를 새로 내놨다. 1990년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디자인이다. 교복에도, 일상복에도 잘 어울리는 신발을 찾던 10대들이 이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즐겨 신던 브랜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유행으로 받아들였다.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 8개월 만에 30만 켤레 이상이 팔렸다. ‘휠라’라는 브랜드에 대한 추억이 있는 30~50대도 사 신기 시작했다.
부모 세대 인기 브랜드, 자녀 세대에서 부활
복고 열풍이 패션업계를 휩쓸고 있다. 휠라, 라코스테, 챔피언 같은 오래된 브랜드들이 과거 인기 제품들을 다시 내놓으며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뭔가 독특한 제품을 찾는 10대들이 유행을 촉발시켰다. ‘남과 다른 아이템’이 멋스러운 패션을 완성한다고 생각하는 불량(?) 청소년들이 이를 주도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20대도 옛날 브랜드를 ‘독창적인 새 브랜드’로 받아들였다.
휠라가 대표적이다. 10대들은 휠라의 로고 F를 한글의 ㅋ으로 인식했다. 큼지막한 F 로고가 새겨진 휠라 티셔츠를 ‘ㅋㅋㅋ티셔츠’라고 부르면서 입기 시작했다. 10대들이 주도한 복고 브랜드 인기는 20~30대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전염되기 쉬운 작은 행동들이 이어지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 즉 ‘티핑포인트’였다. 2010년대 초반 불량 청소년들이 ‘노스페이스’ 패딩을 즐겨 입으면서 아웃도어 열풍을 일으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이 정도까지 인기를 끌 줄 예상하지 못했다”며 “캐주얼 의류를 선호하는 현상과 복고 열풍, 한정판 아이템의 인기 등 트렌드가 맞물려 브랜드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라져가던 브랜드가 다시 살아난 사례는 해외에도 있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신발 브랜드 ‘에어워크’와 ‘허시파피’가 대표적이다. 아무도 신지 않는 신발, 친구들이 입지 않는 옷을 찾던 미국의 불량 청소년들이 에어워크와 허시파피의 부활을 끌어냈다. 맬컴 글래드웰이 이를 티핑포인트로 규정했다. 1993년 1600만달러의 연매출을 낸 에어워크는 티핑포인트였던 1994년 4400만달러를, 이듬해엔 1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복고=패셔너블’ 공식 됐다
라코스테의 악어 로고를 박은 칼라 달린 티셔츠(피케셔츠), 클래식 스니커즈도 복고 열풍에 올라탔다. 비, 송승헌, 박재범 등 인기 연예인이 라코스테 피케셔츠를 입은 모습이 노출되면서 10대들로 인기가 확산됐다. 라코스테의 작년 국내 신발 매출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라코스테는 피케셔츠 스니커즈 등을 묶어 ‘라코스테 스포츠’라는 하위 브랜드를 내놓고 매장을 따로 열었다. 라코스테는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10% 이상 증가한 2225억원으로 잡고 있다.
복고 열풍에 프로스펙스도 동참했다. 1981년 처음 나온 오리지널 스니커즈를 재출시하면서 F를 눕힌 듯한 옛날 로고를 그대로 살렸다. 신발 포장 박스와 상표 등도 옛날 디자인을 적용했다. 프로스펙스 관계자는 “1980년대생이 회원 가입을 하면 20% 할인 혜택을 주는 등 젊은 소비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에서는 당분간 과거 브랜드의 인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기능과 디자인에만 주목하던 과거와 달리 옛날 디자인을 다시 살려서 내놓는 브랜드가 잘되는 시대”라며 “휠라, 라코스테, 챔피언 등 명확한 로고와 콘셉트를 지닌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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