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형 기자 ] 중국은 평화롭게 부상할 수 있을까. 2003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내세운 ‘화평굴기(和平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가능할까. 질문의 요점은 ‘부상’과 ‘굴기’가 아니라 ‘평화롭게’와 ‘화평’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셰이머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한다. 2014년 미국에서 펴낸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개정판에서다. 2001년 출간된 초판에서 미어셰이머 교수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언급했지만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개정판에서는 21세기 국제정치를 전망한 마지막 10장 전체를 할애해 중국 문제를 폭넓고 깊이 있게 논의한다. “중국의 부상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이 향후 수십 년간 경제 성장을 지속한다면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로 소멸된 ‘강대국 국제정치’가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어셰이머 교수는 그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에 근거해 국제 정세 변화를 예측한다. 이 이론은 국가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규범 및 도덕이 아니라 힘과 국익이라고 본다. 국가들이 힘을 추구하는 이유를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무정부 상태라는 국제 체제 구조에서 찾는다. 강대국은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국가를 압도할 수 있는 패권을 추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조용하게 부상할 수 없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진 중국은 미국이 19세기 아메리카에서 유럽 강대국을 몰아냈듯이 아시아에서 미국을 몰아내려고 할 것이다. 또 미국이 해양 통제를 추구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프리카나 페르시아만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해군력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이웃 나라들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균형연합’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같은 전략을 통해 미국 주도의 균형연합을 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런 미·중 대결 구도에서 한국은 미국 주도의 균형연합에 적극 가담할 것인지, 잠재적 패권국인 중국에 편승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저자는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나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미국을 떠나 중국에 편승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나 지정학적 관점에서나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아직 미국에 대적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동맹국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구적 세력 균형 상태에 제약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중 간에 냉전과 비슷한 안보 경쟁이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미·중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냉전 당시 유럽과는 달리 아시아 분쟁지역에서는 핵무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국지적인 제한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비관론적인 예측과 미국 중심적인 시각은 유교적 평화주의나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한 번영 중시론을 앞세워 ‘중국은 평화적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예측한 내용이 실제로 중국의 대미 방어선인 ‘열도선(도련선)’ 설정과 해군력 강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중 갈등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현실주의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통찰력을 줄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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