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 세계 2위 미국 빠져…파리협정 1년반 만에 '존폐기로'
"지구는 하나…트럼프가 실수"…UN·유럽 각국 정상들 맹비난
"미국의 공백 중국이 채울 것"
[ 박수진 기자 ]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195개국이 의기투합했던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의 탈퇴로 출발 1년 반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주요국은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며 협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온실가스 2위 배출국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협정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관심은 미국이 주장하는 재협상 가능성에 쏠리고 있다.
◆오락가락하다 탈퇴 결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1년부터 지구 온난화 주장에 대해 ‘헛소리’ 또는 ‘사기’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해왔다. “온난화는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중국이 만든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입장이 바뀌는 듯했다. 지난해 11월23일 뉴욕타임스 인터뷰 때는 “열린 입장에서 기후변화협약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취임과 함께 발표하겠다던 파리협정 탈퇴 선언도 미뤘다.
결국 취임 5개월여 만에 탈퇴 선언 쪽으로 결론을 냈지만 근거는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탈퇴를 선언하며 “협정이 중국 인도 유럽에 비해 미국에 불리하게 체결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2025년까지 불가능에 가까운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제시했으나 중국은 13년 동안 계속 늘릴 수 있고, 인도는 2020년까지 석탄 생산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유럽도 석탄발전소를 계속 지을 수 있게 돼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 선출된 것”이라며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부담과 책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재협상 또는 전면적인 협정 재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도 가입한 협정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탈퇴 선언 직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과 전화통화를 하며 탈퇴 배경을 설명하고 재협상을 제안했다. 정상들의 반응은 싸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파리협정은 국제적인 협력의 주춧돌”이라며 “협정에서 제시된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이행할 수 있도록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없이도 일단 협정을 끌고가겠다는 의지다.
CNN방송은 “미국이 탈퇴하면 중국이 그 공백을 채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USA투데이는 “미국이 협정에 미가입한 시리아 니카라과와 같은 그룹이 됐다”며 “북한도 가입한 협정에 미국이 빠지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비꼬았다.
◆차기 대선 쟁점될 수도
미국이 탈퇴를 선언했지만 곧바로 협정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파리협정 규정에 따라 협정당사국은 3년간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수 없고, 탈퇴 의사를 밝혀도 1년간 공지기간을 둬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규정대로 절차를 밟으면 최종 탈퇴 시점은 2020년 11월4일”이라고 보도했다. 차기 미국 대선 다음 날이다. 협정 재가입 문제가 대선 쟁점이 될 수 있고, 차기 대통령이 원하면 협정 재가입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관건은 재협상 가능성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나 인도 쪽에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을 배가하고 미국 부담을 덜어주면 재가입하겠다고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제안에 중국이나 인도 등이 대응할 인센티브가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지구를 대체할) 행성B가 없기 때문에 (파리협정을 대신할) 플랜B도 없다”고 재협상 제안을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미국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더 좋은 조건의 새 협정을 추진하겠다”면서도 “공정한 협정이 만들어지면 정말 좋겠지만 안 돼도 좋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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