숍라이트클래식 11언더파 우승, 8개월 만에 LPGA 통산 5승
30㎝ 퍼트 '악몽의 주인공'…지난해 6년 만에 우승 부활
계단에서 굴러 꼬리뼈 부상, 다시 시련 견디며 재활훈련
웨지 샷 정확도 확 높아져
[ 이관우 기자 ]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차이가 없어요. 다만 나이가 들어 좀 더 (성격이) 부드러워졌을 뿐이죠. 호호”
투어 11년차 베테랑 김인경(29·한화)은 ‘골프와 인생’을 알아버린 듯했다. 관조의 느낌이 난다면 과장일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숍라이트클래식을 제패한 5일(한국시간),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전화로 연결된 그는 빠듯한 일정임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툭툭 던지는 말 속에서 곰삭힌 생각의 흔적이 묻어났다. 김인경은 이날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스탁턴시뷰 호텔앤드GC(파71·6155야드)에서 끝난 대회에서 최종합계 11언더파 202타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레인우드클래식 이후 8개월 만의 우승이자, 통산 5승째다.
어둠에서 빛을 보는 긍정 소녀
김인경은 “지난해 말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힘든 재활훈련을 거쳤는데, 예상보다 빨리 우승해 기쁘다”며 “쇼트 게임이 잘 풀린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열린 KEB하나은행챔피언십 이후 5개 대회를 건너 뛰었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꼬리뼈 부위에 타박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주변엔 이를 알리지 않았다. 혼자 재활훈련과 연습을 한꺼번에 소화하면서 스트레스가 컸다. 하지만 그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단다.
“어디 안 부러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잘 쉬면서 코치와 대화도 많이 나눴고요. 하체가 아프니까 상체근육 중심으로 훈련했는데, 약했던 상체가 많이 좋아졌어요.”
부상 때문에 클럽이나 스윙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다만 쉬는 동안 웨지와 웨지 사이의 비거리 차이를 일정하게 조정한 것이 도움이 됐다. 김인경은 “피칭 웨지와 52도 웨지의 거리 차가 20야드 넘게 났는데 이를 15도 안팎으로 맞추고 쇼트 아이언과의 거리 차를 다듬었다”며 “100야드 안쪽의 쇼트 게임에서 정확도가 확 높아졌다”고 말했다.
다양한 취미생활로 평정심 찾아
이번 우승은 2012년 유명세를 치른 ‘나비스코챔피언십 퍼팅 사건’ 이후로는 2승째다. 쇼트 퍼팅 실패의 트라우마는 이제 완전히 씻어낸 것일까. 그는 당시 18번홀 30㎝ 퍼팅에 실패해 다잡았던 우승, 그것도 메이저 대회 챔피언 트로피를 허무하게 날렸다. ‘비극의 아이콘’이란 오명도 그때 따라붙었다.
“과거의 일이에요. 현재나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화가 나긴 했지만 자책하지는 않으려 했다고 한다.
“확실한 건 제가 끈기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어요. 골프 인생 이제 시작일 뿐인데요 뭐.”
연장전 5전5패 경력과 쇼트 퍼팅 실수가 겹쳐진 탓에 ‘유리멘탈’이란 오명을 얻은 데 대해서도 그는 “멘탈이 아니라 실력이 없었던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더 분명한 건 다섯 번이나 우승 문턱까지 갔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승을 하지 못한 것보다 우승할 뻔했다는 것도 꽤 가치있는 일 아니냐는 반문이다. 그를 잘 아는 많은 지인이 ‘김인경의 힘’을 ‘인문학적 호기심’에서 찾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음악 미술 역사 철학 종교 등 관심 분야가 넓다.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튕기면서 그림도 그린다. 독서량도 상당하다. 아무리 바빠도 가방 속에 대여섯 권의 책은 빼먹지 않고 챙겨 다닌다. 다독보다는 한 번 읽은 책을 서너 번 반복해서 보는 ‘숙독’이 습관화됐다. “조직행동론 전문가인 히스 형제가 쓴 《스위치》를 읽었는데, 감명이 컸어요.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성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을 다뤘는데 골퍼들에게도 시사하는 게 많아요.”
장애인 돕는 기부천사
김인경은 통 큰 기부로 유명세를 몇 차례 치렀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상금 22만달러(약 2억5000만원) 전액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2012년부터 발달장애인의 스포츠 제전인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를 맡아오면서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를 추가로 기부했다. 기부 얘기가 나오자 김인경은 정색했다.
“기부라 할 것도 안 돼요. (제가) 받은 게 많아서 아직도 멀었어요. 더 해야죠. 재능기부든 상금이든,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어요. 그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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