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미현 기자 ] 지난달 31일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 이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던 내각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은 국회 인사청문회 검증 문턱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안현호 일자리수석비서관 내정자,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 등 청와대 핵심 참모들까지 ‘중도하차’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크로스 체크 장치 있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6일 새 정부 인사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재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내부 검증을 철저하게 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인사수석실에서 인재를 추천받고, 민정수석실에서 후보자를 검증하고 있다. 이 같은 검증 시스템은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만든 것이다. 추천과 검증의 주체를 분리해 인사에 대해 ‘크로스 체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까지는 민정수석실에서 인사 추천과 검증을 함께 하다 보니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청와대는 여기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내부 인사위원회를 둬 또 한 번 검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추천회의와 같은 역할을 한다.
◆후보자의 말만 믿었나
고위 공직자 후보자의 잇단 의혹에 여권 내에서도 “도대체 어떻게 검증하길래 이렇게 줄줄이 오점이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선 캠프 등을 통해 오랜 인연을 맺어온 후보자의 말을 지나치게 믿고 검증을 소홀히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강경화 후보자가 자녀 교육을 위해 친척집에 위장전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장전입한 곳이 자녀 학교 관사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청와대가 국민을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면 강 후보자 측에서 결과적으로 청와대에 거짓말을 한 셈이다. 김기정 전 안보실 2차장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의혹은 본인이 강하게 부인하는 걸 믿고, 음해성 소문으로 가볍게 치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부터 ‘코드’에 맞는 좁은 인재풀에서 인선 작업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김상곤 전 교육감, 국방부 장관에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의 인사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해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코드 인사는 국정 철학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충족하려면 가용 인재는 많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관료로 기우나
청와대 한 참모는 “현재 사회 지도급 인사 가운데 국민이 감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도덕성 기준을 충족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병역기피 △탈세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위장전입 등 ‘5대 비리’를 피할 수 있는 인재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치인과 관료 중심의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내각 구성이 늦어지면서 행정부의 업무 공백도 장기화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외교부), 최저임금 인상(고용노동부), 전력수급기본계획 마련(산업통상자원부) 등 한두 달 사이 처리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기획재정부 등 6개 부처 차관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이날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국방부 등 6개 부처 차관을 임명했다. 청와대는 차관 인선을 통해 우선 실무를 볼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지만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개혁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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