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경쟁제한 '의도' 있어야 독점지위 남용"…'불이익'만으론 안돼

입력 2017-06-09 20:34   수정 2017-06-10 05:05

<7> 독점적지위 남용의 법적 판단기준 (대법원 2007년 11월2일 선고, 2002두8626 판결)

피고 측 주장
P사의 부당한 재료 공급 거절, 단순 불이익 넘은 경쟁저해 행위

대법원 판결
독과점사업자 '부당성' 판단하려면 시장질서에 영향 주려는 의도 있고
객관적인 경쟁제한 효과 있어야

생각해볼 점
독과점 규제 원칙으로 자리잡아
급변하는 시장…규제 신중할 필요

신영수 < 경북대 로스쿨 교수 >




시장경제에서 독과점 상태는 규제 대상이다. 우리 법체계에서 독과점 규제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왔다. 독과점, 즉 시장지배적 지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 남용을 규제한다는 점, 그리고 금지하는 남용 행위들이 불공정 거래 행위와 유사한 외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만일 두 유형에 모두 해당하는 행위가 발생할 경우 독점기업에 의한 것이라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일반 기업에 의한 것이라면 불공정 거래 행위로 규제되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이 두 행위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판단 기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학계와 실무계의 오랜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시각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은 판결이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 2007년 11월2일 선고, 2002두8626 판결)에 의해 내려졌다. 흔히 공정거래법 관련 판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얘기되는 이 판결로 독점기업의 지위 남용 문제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의 시각에 커다란 차이가 드러났으며, 이후 공정위의 규제 방향에도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중간재 거래처의 ‘공급 거절’

이 판결의 배경은 이렇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뼈대가 되는 차체는 냉연강판이라는 특수가공한 철재로 제조하는데, 이 철재는 다시 열연코일이라는 중간재를 가공해 생산한다.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인 H사는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줄곧 P철강회사 등에서 구입했다. 그런데 1999년부터 H사와 계열 관계에 있는 H철강회사가 자동차용 냉연강판 생산설비를 신설해 이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문제는 냉연강판을 생산하려면 그 소재가 되는 열연코일을 독점공급자인 P사에서 구입해야만 하는데, P사가 H철강회사에 냉연용 열연코일 공급을 거절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열연코일을 공급받지 못한 H철강회사는 P사의 거래 거절 행위가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한 것이라고 보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2심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판결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P사가 과연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지 △P사의 거래 거절로 H철강회사의 사업활동이 방해받았는지 △H철강회사가 사업활동을 방해받았다면 그것이 부당한 것인지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P사는 열연코일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가 분명하며, P사가 H사 계열 철강회사에 대한 거래를 거절함으로써 부당하게 사업활동을 방해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단하고 P사를 상대로 시정조치와 과징금을 부과했다. P사는 이 같은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역시 공정위와 같은 취지로 P사의 주장이 이유 없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 “‘부당한 경우에만’ 문제”

그런데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있은 지 5년 만에 내려진 최종심 판결에서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는 한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먼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와 불공정 거래 행위 모두 ‘부당한 경우에만’ 문제가 되는데, 대법원은 여기서 양자의 ‘부당성’ 의미가 서로 다르다고 봤다. 즉 거래 거절은 거래를 거절당한 상대방이 상당 부분 곤란을 겪는데, 그 곤란이 공정거래를 저해하는 수준이면 불공정 거래 행위로,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정도까지 더 나아가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된다는 것이다. 독과점 규제와 불공정 거래 행위 규제는 다른 차원으로 봐야 하고 독점규제의 독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선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당한 의도나 목적 입증해야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이어진 판결 내용이었다.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서의 부당성이 충족되려면 시장에서 독점을 유지·강화할 의도나 목적, 즉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시장질서에 영향을 가하려는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있고, 객관적으로도 그런 경쟁 제한의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고 봤다.

요컨대 행위자에게 경쟁 제한 의도나 목적이 있었고, 실제로 그 행위로 경쟁 제한 우려가 발생했다는 점이 공정위에 의해 입증돼야만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 판결 요지였다. 단지 특정 상대방과의 거래를 거절했다거나 그로 인해 상대방이 사업활동에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관적, 객관적 요건들은 법 조문 해석을 통해서는 도출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다만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효과가 나타났음이 입증된 경우에는 그 행위 당시에 경쟁 제한을 초래할 우려가 있었고 또 그에 대한 의도나 목적이 있었음을 사실상 추정할 수 있다고 해 공정위의 입증 부담을 어느 정도 완화했다. 이 같은 법리를 적용한 결과 P사에 부과한 공정위의 처분은 취소됐으며 P사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났다.

이 판결로 공정거래법을 토대로 독점기업에 의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규제해온 공정위는 위법성 규명을 위해 매우 큰 입증 부담을 지게 됐다. 실제로 이 판결 이후에 있었던 대다수 사건, 이를테면 인터넷포털 사업자, 케이블방송 사업자, 음원서비스 공급자 등의 지위 남용 여부가 문제된 다수 사건에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판단했지만 법원은 부당성을 부인한 바 있다.

신중한 규제 기조도 필요

올해는 이 판결이 나온 지 꼭 10년 되는 해다. 하지만 이 판결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당시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 즉 독과점 규제에 관해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요건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특히 행위자의 의도나 목적을 경쟁당국이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우는 것이 타당한지가 핵심이다.

독점 규제에 관해 우리나라와 유사한 법을 가진 독일이나 유럽연합(EU)도 경쟁 제한 의도나 목적을 위법성 요건으로 삼지는 않고 있다. 다만 미국 독점금지법에서는 독점 창출이나 유지 의도를 별개 요건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우리 법과 접근방식이 다른 미국 법이 독점기업의 지위 남용 행위 규제 기준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이 판결의 타당성도 충분히 주장될 수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이유로 형사처벌도 가능한 만큼 행위자의 주관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문제되는 대부분 사례가 혁신시장과 같이 변화 주기와 폭이 빠르고 넓은 영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중한 규제 기조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논란과 관계없이 이 판결은 이미 독과점 규제의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앞으로도 생명력을 갖고 규제 기준으로 견지될 게 분명하다. 해석을 둘러싼 찬반 양론보다는 규제의 합리성을 높이면서도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적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 공정위, '독점 의도·목적' 입증에 큰 부담

과거에는 거래 거절 등의 행위가 독점기업에 의해 행해지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일반 기업에 의한 것이라면 불공정 거래 행위로 규제받는 것으로 봤다. 두 행위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판단 기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2007년 대법원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와 불공정 거래 행위 규제가 서로 다른 입법 취지를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시장에서 독점을 유지·강화할 의도나 목적을 갖고 있으며, 객관적으로도 그런 경쟁 제한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음이 입증돼야 한다고 봤다.

이로 인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문제된 다수의 판결에서 법 위반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신영수 < 경북대 로스쿨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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