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이상과 현실 사이' 외줄타는 김상조

입력 2017-06-15 17:53   수정 2017-06-16 09:12

'정부 CEO' 24시 -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장

재벌 무턱대고 옥죄기보다 기업인들 직접 만나 '소통'
실현 가능한 개혁안 내놓을 것

을지로위원회 '옥상옥' 우려…조만간 국정기획위와 논의



[ 황정수 / 장창민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사진)에 대한 시장의 주된 평가는 ‘헷갈린다’는 것이다. 지난달엔 “난 말랑말랑해지지 않았다”며 강성 면모를 한껏 드러내더니 지난 14일 취임식 직후엔 “재벌개혁은 몰아치듯 할 수 없다.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할 것”이라며 완급 조절 의사를 내비쳤다.

발언의 온도차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강력한 재벌개혁’과 ‘실행 가능한 현실적 정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현실 쪽에 기울면 그를 지지하던 측에서 “김상조를 위원장에 앉혀놨더니 현실과 타협했다”는 비아냥을, 이상을 좇다 보면 반대 측에서 “교수 출신 위원장이 현실을 모르고 기업을 망하게 한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김 위원장 자신도 머릿속에 이런 고민이 가득했다. 직접 만나 들어본 김 위원장의 재벌개혁 복안은 오히려 ‘현실론’에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개혁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거친 방식이 아니라 재벌이 따라올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드러냈다.

◆“재벌개혁 가이드라인 제시 예정”

김 위원장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장애물’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13일 청와대 임명장 수여식 이후 김 위원장을 자택 앞에서 만났을 때 그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현실의 벽을 누구보다 많이 겪어봤다”고 말했다. “여야가 대치 중인 국회 상황을 감안할 때 개혁입법이 당장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재벌개혁 공약을 포기할 수 없는 게 김 위원장의 상황이다. ‘김상조식 재벌개혁’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포지티브 캠페인’식의 재벌개혁 구상을 털어놨다. 재벌을 무작정 옥죄는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개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공정위가 제시한 방향으로 재벌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의 경제분석 역량을 높이는 게 우선이지만 가이드라인을 내는 과정에서 재벌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 직접 만날 것”

기업인과 충분히 만날 것이란 의사도 나타냈다. 15일 출근길에 만난 김 위원장은 “조만간 (기업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함께 변해야 할 방향에 대해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떨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말랑말랑한’ 정책에만 주력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는 현행법 테두리에서 제재할 수 있는 재벌들의 ‘탈법’ 행위에 대해선 강력한 제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대기업 전담 조사 조직인 옛 조사국 역할을 할 ‘기업집단국’을 통해 현실화될 전망이다.

기자간담회에선 “기업집단국 조직과 인력을 공정위가 원하는 수준의 절반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엄살을 떨었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김 위원장은 “600명이 안 되는 인력이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할 정도로 인력이 모자라다”며 직원 수를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국정기획위와 재벌개혁 논의

‘을지로위원회’에 대한 고민도 나타냈다. 을지로위원회는 갑을 관계의 폐해를 다루는 ‘여당 내’ 조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을지로위원회에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을 참여시켜 ‘국가조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요즘 회의 내용의 주요 토픽이 을지로위원회일 정도로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함구했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안에서조차 ‘옥상옥’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고 전해주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국정기획위를 조만간 찾아 논의할 수 있다는 뜻도 나타냈다.

이런 김 위원장의 행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을 오래 지켜본 한 공정거래 전문가는 “요즘 행보엔 ‘지킬 수 있는 말만 한다’는 그의 평소 성품이 녹아 있다”며 “무리한 정책을 펼 사람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황정수/장창민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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