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그 카나 지음 / 고영태 옮김 / 사회평론 / 624쪽│2만8000원
분할서 연결로 패러다임 이동
국경 위주 면 중심적 사고는 도시·공급망 연결 못 담아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은 연결성 간과…실패한 정책"
[ 송태형 기자 ]
“지리는 운명이다.(Geography is destiny.)”
나폴레옹이 막강한 영국 해군에 막혀 영국상륙작전에 실패한 뒤 처음 말한 것으로 알려진 격언이다. 지정학 이론에서 불변의 진리로 널리 인용된다. 지리적 조건이 인류 문명과 국가의 흥망, 국제 역학관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는 신간 《커넥토그래피 혁명(원제: Connectograghy)》에서 “이 격언은 점점 구식이 돼가고 있다”며 “미래에는 ‘연결이 운명이다(Connectivity is destiny)’는 새로운 격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카나는 미국 싱크탱크 뉴아메리카파운데이션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자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미국 특수작전부대 지정학 담당 선임고문 등 외교·전략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글로벌 전략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카나는 이 책에서 ‘연결’이란 키워드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는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먼저 ‘분할’이 아니라 ‘연결’ 중심의 세계 지도가 새로 그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지도는 면과 면으로 이뤄졌다. 대륙과 대륙을 가르는 산맥, 육지와 해양이 만나는 해안선, 국경과 국경이 맞닿는 경계선 중심의 면과 면으로 직조된 세계였다.
저자에 따르면 대륙과 국가, 영토 중심의 지도는 더 이상 21세기의 새로운 변화를 표현할 수 없다. 면의 시대는 사라지고 ‘도시’라는 점과 ‘공급망’이라는 선으로 연결된 시대가 도래했다. 고속도로, 철도, 공항, 송유관과 가스관, 전기공급망, 인터넷 케이블 등 국제적인 교통·통신·에너지 기반시설은 세상을 분할에서 연결로, 국가에서 접속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도시가 국가보다 중요해지고 공급망이 군대보다 중요한 힘의 근원이 되는 시대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지정학적 지도가 아니라 도시와 공급망을 중심으로 주요 기반시설과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표시하는 기능적 지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카나가 ‘연결(connectivity)’과 ‘지리(geography)’를 합성해 책 제목에 붙인 ‘커넥토그래피’에는 점과 선으로 연결된 새로운 세계가 담겨 있다.
그는 이런 거시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정치·외교 분야로 확장해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세계 전략과 국제 정세를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이른바 ‘포위 전략’을 펴고 있다. 이는 중국 주변에 있는 한국, 일본,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파키스탄, 몽골 등과 군사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조지 부시 정부부터 최근까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이 핵심전략을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한다. 포위 전략 구성 자체가 연결성의 중요성을 간과한 국경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인도양 주변에 대한 에너지 자원과 기반시설 투자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세계 전략이 미국의 포위 전략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는 두테르테 정권 등장 이후 미국과 필리핀의 마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한·미 갈등과 중국의 반발 등을 미국의 포위 전략에 대한 중대한 경고음으로 인식한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미국 정부가 ‘연결 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국제관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건설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세계 전략에는 후한 평가를 내린다. 연결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나는 “지정학적 경쟁의 본질이 영토 전쟁에서 연결을 위한 전쟁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 전쟁은 세계 공급망, 에너지 시장, 산업 생산, 가치있는 금융과 기술, 지식, 인재의 흐름에 대한 주도권 경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연결성 증대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으로 인식한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진영의 득세와 정치적·군사적 충돌, 영토분쟁 등 그 어떤 것도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간단하다. 연결성이 증대되면 불확실성과 복잡성도 높아지지만 결국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연결되면 그 연결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버릴 수 없다”며 “연결성 증대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미래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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