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 막걸리학교 대표 "좋은 술엔 많은 이야기 담겨있죠"

입력 2017-06-18 18:17  

한국 전통주 매력 알리는 허시명 막걸리학교 대표

자유기고가로 전국 술맛 눈 떠…막걸리 창업·인문학 등 강좌
"서울 전통주 '삼해주' 재현 성공…지역 특색 살린 술·식당 많아야"



[ 임근호 기자 ]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사진)은 “2009년 학교를 세운 이래 술에 취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술을 차(茶)처럼 마시려고 한다는 그는 기자에게도 복분자 막걸리 한 잔을 차처럼 내왔다. “차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맛을 보려고 마시지,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 자랑하려고 마시지 않잖아요. 제가 막걸리학교를 세운 것도 한국의 술 문화를 바꿔보고 싶어서였어요.”

서울 경복궁 옆 사간동에 자리 잡은 막걸리학교는 짧으면 두 달, 길면 석 달짜리 강좌를 마련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통주 시음, 술과 관련한 인문학 강좌, 술 빚기 강좌, 하우스막걸리 창업강좌, 우리 술 해설사 강좌 등이다. 2013년에는 부산 분교도 생겼다. 지금까지 졸업생이 2000여 명이 넘는다.

허 교장은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도 어떻게 술을 마셔야 좋은지, 어떤 술이 좋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세상에 다양한 술이 있지만 기껏해야 소주나 맥주를 마시는 데 그치고, 술맛을 느끼기보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취한 기분을 느끼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나와 1989~1993년 월간지 ‘샘이깊은물’ 기자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잡지사를 나와 자유기고가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좋은 술에 눈을 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난 농작물로 만든 지역 술을 맛보면서였다. “좋은 술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어느 지역에서 누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나 하는 이야기예요. 프랑스 와인이나 일본 사케처럼 우리나라 곳곳에도 이야기와 특색이 담긴 술이 많아요.”

허 교장은 지난해 ‘삼해주 부활 프로젝트’를 벌였다.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는 ‘서울의 전통주’다. 1년에 딱 한 차례 빚는데, 술을 빚어 마시기까지 약 100일이 걸려 백일주라고도 불렸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마포에서 삼해주 수천 독이 빚어졌지만 일제가 주세법을 제정해 집에서도 면허가 있어야 술을 빚을 수 있도록 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서울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국제적인 관광도시지만 이들에게 내놓을 서울의 술 한잔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다행히 삼해주는 안동 김씨 집안의 며느리인 권희자 씨, 통천 김씨 집안의 며느리인 이동복 씨와 아들 김택상 씨 등에 의해 집안의 술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허 교장은 지난해 마포구 연남동에서 이 삼해주를 알리는 행사를 열 수 있었다.

최근 수제 맥주 열풍은 어떻게 볼까. 막걸리와 한국 전통주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그에겐 부럽고 배 아픈 일이 아닐까. “맥주는 우리나라 술 소비의 약 55%를 차지해요. 맥주를 마시지 말자는 건 커피 대신 국화차를 마시자고 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말이죠.”

그는 “막거리학교에는 맥주 강좌도 있다”며 “오히려 수제 맥주를 통해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막걸리나 전통주도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상표와 병 디자인, 술맛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요즘 들어 유리병이나 도자기에 담긴 막걸리도 나오지만 아직 막걸리 하면 초록색 플라스틱통에 든 ‘싸구려 술’이란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허 교장은 막걸리의 경쟁력이 지역성에 있다고 했다. 전국 1000여 곳이 넘는 양조장에서 다양한 특색의 막걸리가 제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식당 하시는 분들이 주류회사에서 공급해주는 대로 아무런 고민 없이 주류를 구성해 식당마다 파는 술이 다 똑같다”며 “음식에 맞춰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을 준비해 판다면 우리 술도 살고 식당도 특색 있는 식당으로 이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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