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번표 일방 통보…학부모 '울상'
맞벌이로 참여 줄자 학교서 강제…학교 앞 문방구는 알바 중개소
학교·지자체, 직무 떠넘기는 격…'자녀 미움받을까' 항의도 못해
[ 구은서 기자 ] “시급 2만원 ‘녹색 알바’ 구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 김모씨(42)는 최근 인터넷 육아커뮤니티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씨가 포함된 녹색어머니회 순번표를 일방적으로 보내와서다.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해봤지만 ‘일일이 빼주면 참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녹색어머니회 때문에 작년에 대여섯 차례 휴가를 냈다”며 “직장에 눈치가 보여 주위 엄마들 조언대로 녹색 알바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에서 강제로 전환…워킹맘들 ‘울상’
녹색어머니회는 초등학교 등하굣길 교통지도 활동을 하거나 안전교육을 하는 민간 자원봉사단체다. 본래 초등생을 둔 어머니 중 원하는 사람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이 늘고 지원자를 찾기 쉽지 않자 학교에서 참여를 강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어린이 교통사고가 언론에서 부각되며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옐로카펫(횡단보도 진입부를 노란색으로 칠하는 어린이보호장치) 등 등하굣길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도 녹색어머니회 강제화에 한몫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어린이 등하굣길 안전이 점점 강조되고 있지만 등교시간에는 조회, 하교시간에는 방과후학교나 돌봄교실 때문에 교사들이 교통 지도를 하기 어렵다”며 “어쩔 수 없이 학부모 손을 빌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봉사 아닌 봉사’ 때문에 초등학교 앞 문방구는 ‘녹색 알바 중개업체’로 통한다. 녹색 알바 구인구직을 중개해 주는 대가로 일정 수수료를 떼간다. 학교 앞 많은 문방구에는 ‘하루 2만원, 이틀 3만원’식의 알바비 ‘시세’가 붙어 있다. 문방구에서 녹색 알바를 구했다는 고모씨(44)는 “학교나 교육청에서 써야 하는 용역비용을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지급하라는 셈”이라며 “자녀가 학교에서 미움을 받을까 봐 항의도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지자체·학교 책임 모성에 전가” 비판
녹색어머니회뿐만 아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관내 경찰서와 함께 ‘폴리스맘’ ‘마미폴리스’ 등의 이름으로 학부모 자율방범순찰대를 조직해 운영 중이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 중인 김모씨(40)는 “1학기 초 녹색어머니회는 물론 어머니폴리스까지 전교생 학부모가 의무로 참가해야 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며 난감해했다.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녹색어머니중앙회, 교육청 등에서는 강제하지 못하도록 안내 중이다. 강윤례 녹색어머니중앙회장은 “교육부를 통해 일선 학교에 ‘녹색어머니회 참여를 강요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면서도 “관련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 자원봉사를 강제한다면 사실상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책임을 어머니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의 학교 교육 참여는 자발성에 기초해야 하고,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등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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