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공동 일자리연대기금 제안 배경은
1·2심서 패소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기고
9만3000여명 조합원도 동의해야 하는데…
"귀족노조 비판 덮으려 통큰 양보 제스처"
[ 강현우/심은지 기자 ]
듣기에도 낯선 ‘사회연대기금’이 경제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의 산파역을 자임하며 무소불위에 가까운 영향력을 지니게 된 노동계가 올해 ‘투쟁 구호’로 내건 용어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비정규직 지원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귀족노조의 기득권 강화’를 더욱 획책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떤 돈으로?
2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산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17개 노조를 중심으로 회사 측에 총 5000억원 규모의 ‘노사공동 일자리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기금으로 하청업체 등 제조업 근로자 일자리를 확대·보호하자는 주장이다.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때 늘어나는 연장근로수당 체불임금을 회사가 일시에 지급하면 조합원이 그 중 일부를 초기 재원으로 내놓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각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체불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9만3000여 조합원이 소송에서 이기면 1인당 2100만~6600만원, 평균 4000만원의 임금을 한꺼번에 받게 된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 1·2심 법원은 “현대차의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다”는 이유로 노조 측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업계에선 “금속노조의 중심축인 조합원 5만여 명의 현대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최종 패소할 위기에 놓이자 ‘일자리연대기금’이라는 형식을 빌려 임금을 더 받으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합원들 임금 내놓을까?
더욱이 금속노조는 이 같은 방식의 기금 마련에 아직 조합원 동의를 받지 않았다. 금속노조가 조합원 동의도 없이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을 들고 나온 것은 고임금 대기업 노조를 향해 제기되는 ‘귀족노조’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라는 관측이 많다. 금속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이 현 정부를 향해 요구하고 있는 ‘노·정 교섭’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노동계도 일정 부분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이달 말부터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금속노조는 일자리연대기금 사용처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 등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노조가 나서서 보완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기금 출연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한다 해도 조합원 1인당 평균 일시금 270만원, 매년 10만원 정도를 기금에 내야 한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노사 합의로 자체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한 적은 있지만 그 재원을 조합원이 부담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와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를 위한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임금·단체협약 안건에 올렸으나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금속노조가 ‘가상의 돈’으로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진짜 속셈은?
경제계는 금속노조의 노림수가 다른 곳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이라는 명분을 통해 주요 그룹사의 공동교섭을 달성하려는 것이 실질적 속내라는 의구심이다. 실제 금속노조는 일자리연대기금의 구체적 사용방안을 현대차그룹 공동교섭을 통해 결정하자고 요구했다.
그룹사 공동교섭은 산별노조로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금속노조가 세력 규합을 위해 내세운 전략이다. 주요 요구안은 △계열사 일자리·생산량 조절에 노조 참여 △근로시간 단축과 총액임금 보전 등 기존 노조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별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들어줄 수도 없고 법적으로 들어줘야 할 의무도 없다”며 공동교섭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처럼 문재인 정부에 ‘코드’를 맞춘 일자리연대기금을 들고 나오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에 점차 먹구름이 몰려오는 분위기다.
강현우/심은지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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