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달러도 아슬아슬한 유가, WTI 9개월만에 최저치
2월말보다 21%나 떨어져
셰일업계 "배럴당 40달러도 이익"
새 유정 계속 개발할 듯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상장 추진 사우디, 추가 감산 배제못해
[ 김현석 기자 ] 국제 유가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며 다시 배럴당 40달러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발표 전으로 돌아갔다. 미국 셰일오일 증산에 발목 잡힌 데다 일부 비OPEC 국가가 생산량을 늘린 데 영향을 받았다.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상장을 추진 중인 ‘스윙프로듀서(세계 원유시장의 수급을 조절하는 주도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추가 감산에 나설지 주목된다.
약세장에 진입한 유가
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7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2% 이상 하락한 배럴당 43.23달러로 마감했다. 지난해 9월16일(43.03달러)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2월23일 전 고점에 비하면 21% 떨어졌다. 고점 대비 20% 하락은 기술적으로 ‘약세장 진입’을 의미한다.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이 지속적으로 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 감산에서 제외된 OPEC 회원국들이 생산을 늘린 게 악재로 작용했다.
장 마감 뒤 미국석유협회(API)가 지난주 미국의 원유 재고가 270만배럴 감소했다고 발표했지만 반등폭은 미미했다. 21일 새벽 1시 기준 WTI 가격은 43.49달러로 오르는 데 그쳤다. 영국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0.89달러 하락한 46.02달러, 두바이유는 0.06달러 떨어진 45.62달러를 기록했다.
감산효과 미미해져
국제 유가는 2015년 하반기부터 하향곡선을 그렸다. 60달러 선에서 45달러까지 미끄러졌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국제 유가를 압박했다. 시장점유율을 뺏기지 않으려는 사우디 등 산유국은 증산으로 맞서며 미 셰일업계와 치킨게임을 벌였다. 채굴비용이 높은 셰일오일이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말려버리겠다는 전략이었다. 미 셰일업계는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원가를 더 낮추고 생산성을 높였다.
지난해 말 사우디 등 OPEC 회원국이 먼저 두 손을 들었다. 유가 하락으로 수입이 줄면서 막대한 재정적자를 버텨낼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30일 감산에 합의하고 12월엔 러시아 등 비회원 11개국의 감산 동의도 이끌어냈다. 유가 의존도를 낮추려는 사우디가 아람코의 상장을 위해 감산을 주도했다. 이 영향으로 40달러대에서 횡보하던 국제 유가는 작년 말부터 올 2월까지 50달러대를 유지했다.
미국 셰일업계는 신이 났다. 유전정보회사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가스 시추공 수는 지난 1월13일 659개에서 이달 16일 933개로 40% 이상 증가했다. 22주 연속 증가 추세다. 미리 파놓고 있는 시추공도 5946개에 달했다. 3년 만의 최대 수준이다.
윌리엄 포일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텍사스 셰일오일 산지인 퍼미안분지의 시추공 개수가 현재 사상 최대 수준”이라며 “이게 절정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달 OPEC이 올해 6월 종료할 예정이던 감산을 연장키로 했지만 효과는 얼마 가지 않았다. 늘어난 셰일오일 생산량과 미국 원유 재고가 국제 유가 반등세를 눌렀다.
추가 감산에 나서나
아람코 상장과 맞물린 사우디는 감산 합의 이후 점유율 상실을 감수해왔다.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난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기업가치 2조달러의 아람코를 내년 하반기께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람코 지분 5%를 팔아 1000억달러가량을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유가 하락에 따라 기업가치가 계속 떨어져 아람코의 상장이 늦춰질 가능성도 제기돼왔다.
21일 사우디가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제2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32)을 제1왕위계승자로 책봉해 상장은 계속 추진될 전망이다. 유경하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람코 상장을 주도해온 인물”이라며 “상장을 계속 추진하고, 이를 위해 추가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지난달 감산 연장을 이끌어낼 때 감산량을 하루 평균 180만배럴에서 30만~50만배럴 더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변수는 역시 미국 셰일업계다. 수익성 높은 퍼미안분지의 일부 업체는 배럴당 40달러 밑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체링턴 아거스에너지매니저 공동 창업자는 “국제 유가가 40달러를 웃돌면 셰일업체들은 계속 새 유정을 개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