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갈라파고스식 장벽' 높아져
거래환경 개선해 경쟁력 높여야
임재준 <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 >
지난 20년은 파생금융상품이라는 생소한 ‘외래종’이 국내 자본시장에 정착한 기간이었다. 1996년 한국거래소에서 첫선을 보인 뒤 자본시장 생태계 주역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주가지수를 비롯해 주식, 채권, 외환 선물(先物) 등으로 저변을 넓히며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설과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선물(膳物)세트 구매 문의가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파생상품시장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주는 기능이다. 파생상품시장이 커지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주가연계증권(ELS) 등 금융상품이 다양해졌고 해외 투자상품에 대한 환위험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도 사실이다. 파생상품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는 적은 비용으로 리스크를 방어해 주는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 고위험 상품의 특징도 동반하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시장의 고속 성장은 일반 개인투자자 주도의 시장 과열 현상도 한몫했다. 금융당국과 금융업계가 파생상품시장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해법을 모색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파생상품시장의 제도 울타리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시장과 다소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식 제도’를 낳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갈라파고스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1000㎞ 떨어진 섬으로, 고유의 생태계를 갖고 있다.
제도 강화로 파생상품시장이 위축되자 금융당국이 지난해 11월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은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이에 따라 올 1분기에 신상품 상장절차 간소화와 투자자 진입 제도 개선이 이뤄졌고, 지난 26일에는 ETF 선물 상품도 출시됐다. 외국인 통합계좌(옴니버스)와 개인투자자 헤지전용계좌제도도 도입됐다.
ETF 선물 상품은 ETF 투자자들이 직접적인 위험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미국에서는 ETF 선물·옵션의 활용도가 높은데 국내 시장에서도 성장이 기대된다. 외국인 통합계좌는 다수의 국내 비거주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장내 파생상품을 일괄해서 주문·결제하는 제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일반화된 제도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통합계좌제도를 시행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통합계좌 도입으로 국내 증권업계는 해외 선물중개업자를 통한 해외 투자자 유치가 쉬워질 전망이다. 마케팅 효율성 증대와 영업 기반 확대 효과가 기대된다.
헤지전용계좌는 개인투자자가 주권계좌에 보유한 개별주식, ETF 등 자산 범위 한도 내에서 기본예탁금 없이 파생상품으로 헤지 거래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다. 헤지 거래 시 기관투자가는 증거금 감면 등 혜택이 있었지만 개인에게는 별다른 지원이 없었다. 이번 조치는 헤지 목적의 개인에게 진입 제도를 완화하는 효과가 클 것이다.
지구촌 자본시장에서 파생상품을 위한 인프라가 표준화되기 시작하면서 갈라파고스식 시장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국제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하면 파생상품시장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환경의 변화가 크고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에만 통용되는 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 이번 파생상품 제도 완화를 발판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거래환경을 개선하고 선진 시장을 조성하길 기대해 본다.
임재준 <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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