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 기본 틀 바꾼 결단
'모두채움신고서' 도입…납세자 성실신고 지원
세무조사 대폭 줄이고도 세금은 계획보다 더 걷어
내부 개혁작업도 성과…비고시 출신 직원 발탁
능력에 따른 탕평인사…부정부패 추방에도 심혈
[ 이상열 기자 ] “자유인으로 돌아가게 되니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28일 오전 퇴임식을 위해 국세청 세종청사 3층 대강당으로 걸어 들어가는 임환수 전 국세청장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소회를 묻는 기자에게 “떠나는 사람이 말없이 떠나야지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며 “다만 무거운 책임을 벗게 돼 너무 홀가분하다”고 했다.
임 전 청장은 2014년 8월 취임해 2년10개월간 국세청장을 맡았다. 추경석 전 청장(1991년 12월~1995년 12월)에 이어 ‘두 번째 장수 청장’이란 기록을 남기고 한승희 신임 국세청장에게 바통을 넘기게 됐다.
길었던 임기만큼이나 그가 남긴 업적은 유달리 크다는 게 국세청 직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임기 중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임 전 청장은 “취임할 때 세수 상황이 안 좋아 큰 문제였지만 2015년부터 세금이 잘 걷히고 있다”며 “떠나는 마당이지만 이건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세정 ‘패러다임 전환’ 대성공
국세청 안팎에선 올해까지 3년째 ‘세수 풍년’이 이어진 데는 임 전 청장이 취임 직후부터 추진한 ‘세정 패러다임 전환 작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본청과 지방청의 조사국장만 여섯 번 지낸 ‘조사통’인 임 전 청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재계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취임한 다음부터 그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세정 중심을 ‘세무조사 등 사후 성실신고 검증’에서 ‘사전 성실신고 지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국민이 쉽고 편하게 세금을 낼 수 있도록 국세청 조직과 인프라 개편에 나선 것이다.
취임 직후 지방청 ‘세원분석국’을 ‘성실납세지원국’으로 바꾸고 전국 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 ‘세금문제상담팀’을 꾸린 것이 대표적이다. 2015년 2월엔 차세대 국세행정통합시스템(NTIS)을 성공적으로 개통해 세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정확한 세금 신고를 지원하는 ‘사전안내서’를 발송하고 모든 자료가 다 채워져 서명만 하고 세금 신고를 끝낼 수 있는 ‘모두채움신고서’도 도입했다.
그러면서도 세무조사는 축소했다. 2013년 1만8079건에 달하던 세무조사 건수는 취임 첫해인 2014년 1만7033건, 2015년 1만7003건으로 줄였다.
2015년부터 이런 노력은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본예산 대비 기준으로 2013년 14조5000억원, 2014년 10조9000억원에 달하던 세수 결손이 2015년엔 2조2000억원의 초과 세수로 전환했다. 지난해 초과 세수는 20조원에 육박했다. 올해도 4월까지 전년 대비 8조원 넘게 세수가 늘었다.
임 전 청장은 “세무조사 인력은 4000명 정도로 수십 년간 변함이 없지만 납세자는 계속 증가해 세무조사로 세수를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국세청은 국민이 법에 정한 세금을 성실히 내도록 돕는 기관으로 더욱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고시 출신 직원 희망 높여줘”
임 전 청장은 국세청 내부 개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능력에 따른 탕평 인사에 나서 비고시 출신 직원을 중심으로 “‘희망의 사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다”고 호평받았다. 취임 직후 비고시 출신인 김봉래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을 27년 만에 본청 차장에 임명하고 일선 세무서 근무자 중 승진자 비율을 크게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임 전 청장은 “고시 출신은 서운할지 모르지만 98%에 달하는 비고시 출신이 따라오지 않으면 세정을 펼쳐나갈 수 없다”며 “출신 여부와 상관없이 능력에 따른 인사를 했다고 자부한다”고 회고했다.
임 전 청장은 국세청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지난해 1월 국세청에 준법·청렴추진단을, 두 달 뒤인 3월엔 지방국세청에 준법세정팀을 신설해 직원들이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도록 챙겼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와중에 국세청은 다른 부처들과 달리 별 탈이 없던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란 분석이다.
임 전 청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무신무립(無信無立), 즉 신뢰가 두터워야 당당히 바로 설 수 있다”며 “신뢰받는 국세청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퇴임식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임 전 청장에게 ‘임기 중 아쉬웠던 점’을 묻자 “오래전부터 ‘내가 만일 청장이 된다면 해야겠다’고 맘먹은 것들을 임기 내 다 해봐서 특별히 아쉬운 것은 없다”고 답했다. 퇴임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계획이 없다”며 “당분간 집에서 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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