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응시료가 공무원 시험 7배…미국에 연 300억원 로열티
일본·중국 '토종시험' 자리 잡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마감한 국가공무원 7급 공채시험 응시자가 크게 줄었다. 믿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지원자 수가 4만8361명으로 작년보다 27.5%나 감소했다. 9급 시험은 여전히 사상 최대 규모 지원자로 북적인다. 유독 7급 시험 응시자가 급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혁신처는 영어 탓으로 돌린다. 작년까지는 7급도 영어시험을 다른 과목과 함께 당일 치렀지만 올해부터는 토익(TOEIC) 토플(TOEFL) 텝스(TEPS)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성적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한 수험생들이 걸러졌다는 얘기다. 인사혁신처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나 그러는지.
일단 7급 시험에 1차 필기시험이 추가됐다는 의미다. 채용 절차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건 둘째다. 한국 공무원을 뽑는 데 첫 관문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공무원 생활에 얼마나 영어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번 7급 시험에 영어 성적이 모자라 원서를 쓰지 못한 수험생이 어림잡아 2만 명을 넘는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응시생 중 적어도 90% 이상은 토익 시험을 본다. 응시료가 4만8900원이다. 7급 시험 수험료 7000원의 무려 7배다. 취업준비생들의 응시료 부담을 생각이나 해봤는가.
게다가 토익이라는 게 뭔가. ETS라는 미국의 민간 재단이 만든 시험이다. 국내 대행사가 떼는 수수료도 과다하지만 27.4%는 ETS가 가져간다고 한다. 한국 공무원 시험을 보면서 필기고사 수험료의 두 배가 되는 돈을 미국에 납부하는 현실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가. 이번 7급 시험 과정에서 미국에 나간 돈이 적어도 10억원은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7급만이 아니다. 5급 공채 영어시험이 토익 등으로 대체된 것은 이미 오래다. 괜히 ‘토익 식민지’라고 하겠는가.
전 세계 토익 응시자 10명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매년 200만 명 이상이 토익 시험을 보고 300억원 이상이 미국에 로열티로 나간다. 한국 덕분에 먹고 산다는 토익이다. 이뿐인가. 토익이라는 시험은 문제를 푸는 스킬이 중요해 독학이 쉽지 않다. 학원비와 교재비에 골병이 든다. 시작하면 50만원은 기본이고 100만원도 우습다는 게 취준생들의 하소연이다.
게다가 시험이 독점적인 구조다. 수험생이 골탕을 먹는 일이 잦은 이유다. 한국의 토익 시험을 관리하는 곳은 한국토익위원회다. 무슨 정부 기관이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개 영어학원의 자회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응시료 책정부터 일방적이다. 거의 2년마다 5% 이상 올린다. 20년간 두 배로 올랐다.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제때 신청하지 못하면 시험 날짜가 꽤 남았어도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환불할 때 물어야 하는 취소수수료는 눈물이 날 정도다. 성적도 3주가 지나야 통보되고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만점자도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는 ‘토익 무용론’ 속에서도 토익이 한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할 시험이 없어서다. 시도가 있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563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형 토익이라는 니트(NEAT)를 개발했다. 하지만 정책 일관성의 부재와 낮은 인지도 탓에 2015년 폐지됐다.
일본은 한국 다음으로 토익 의존도가 높지만 EIKEN이라는 시험을 개발해 꾸준히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도 국가 주도로 개발한 CET라는 시험이 응시료가 비싼 토익을 따돌리고 공인 영어시험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도 토종 시험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제와 시행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감독과 평가에 따른 개선이 뒤따르면 얼마든 가능하다. 지금처럼 평가시험의 독점 구조를 방치해선 곤란하다. 수능, 취업, 승진 영어가 언제까지 따로 존재해야 하는가. 영어 교육의 목적을 제대로 정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가야 한다.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방식이 더 비효율적이고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 민간은 몰라도, 한국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영어로, 그것도 그 비싼 미국의 토익으로 1차 시험을 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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